신부님께 드리는 여덟 번째 편지..

2010. 7. 4. 오전 8:28:36

글자
안녕하십니까! 윤 신부님!!
 
이곳 호주는 한국과 분명 계절이 반대이지만 한가지 재미있는 것이 있다면 바로 겨울에 비가 많이 온다는 것입니다. 한국도 분명 여름장마가 시작되었을 시간에 이곳 남반구 호주도 비가 많이 옵니다. 재미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비교가 되는 기후가 삶의 재미를 줍니다.
 
제가 이렇게 시리즈로 신부님께 편지를 쓰는 이유는 이제 더 이상 길고 지루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신부님께서 개별적인 답변을 하지 않으시겠다고 하셨기 때문에 개별적인 것이든 저희 공동체 전체에 하시는 답변이든 제가 드리는 질문 아니 저희 공동체 전체의 질문이라고 생각되는 질문에 대해 답변을 들어야겠다는 일념으로 이렇게 다시 편지를 씁니다. 이제 이 편지는 여덟 번째가 됩니다.
 
요즘 외신이 전하는 소식 중에 거의 매주 가톨릭 소식이 있습니다. 성 추문 사건으로 가톨릭 교계에 먹칠을 한 주교가 있었고, 聖職者가 性職者라는 놀림을 받았습니다. 가톨릭 신자로서 참으로 부끄러웠습니다. 제가 가톨릭이라는 종교를 선택한 큰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신부님들이 결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욕망을 억제하는 것은 정말 극한의 고통과 같다는 믿음 때문이었죠. 그런데, 그 욕망의 방향이 아이들에게로 향하는 삐뚤어짐을 볼 때 과연 다른 종교신자나 종교를 믿지 않는 비 신자들이 봤을 때 참 웃기는 현상이겠죠. 그리고, 이제는 性職者에 이어 錢職者라는 타이틀이 하나 더 생겼습니다. 이것은 다음 편지에서 언급을 할 예정이라 더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지난 두 번째 편지에서 저는 법에 대해 말씀 드렸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가지는 법 감정에 대해서도 언급하였습니다. 자고로 법이란 사람 위에 군림해서는 안 된다는 믿음, 보통 사람의 삶에 법이란 공기와 물처럼 순간순간 인식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 말입니다. 지난 주 신부님께서 저희 공동체 신자들에게 주신 답변서에 저희가 드린 질문에 대한 답변을 일일이 하지 않으시겠다고 하시면서 참고하라고 하신 것이 있는데, 바로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입니다. 오늘 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이것입니다.
 
이 천 년의 가톨릭 역사가 대변하는 것이 현재의 신도수입니다. 통계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보면 불교가 15억, 이슬람이 12억 5천, 가톨릭이 11억 3천 정도라고 합니다. 물론 가톨릭, 개신교, 그리스 정교, 성공회 등을 합치면 세계 최대의 종교는 기독교로 약 22억 명이라고 하더군요.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이야기를 한다면서 뜬금 없이 각 종교의 신도수를 이야기 하는 이유는 가톨릭의 교세가 시간이 갈수록 약해지고 있다는 것을 말씀 드리려고 그랬습니다. 모두 아는 사실입니다. 한국도 개신교의 욱일승천 하는 기세와 대조되게 성당에 모인 사람들은 아녀자와 노약자 밖에 없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는 것이 사실 아닙니까? 그것은 지난 편지 때도 제가 말씀 드린 것처럼 가톨릭 교계의 경직성에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한국은 한술 더 떠서 신부님의 권위주의가 심각합니다.
 
신부님께서 참고하라고 하신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자료를 찾아봤습니다. 제가 이해한 핵심은 이것입니다. 가톨릭 교회의 본질은 ‘교계제도’가 아니고 저희 공동체처럼 친교의 공동체로서 하느님 앞에 서면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성직자나 일반신도 모두 동등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난 역사의 잘못을 인정하고 새로운 교회상을 정립한 것으로 신부님께서도 인정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보기에 이율배반적으로 보이는 것들을 말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교회의 본질이 교계제도가 아니라는 것은 수직적 관계가 아니라 수평적 관계라는 것을 말합니다. 제가 말씀 드린 것처럼 국민 없는 국가와 신자가 없는 신부와 똑같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겠죠. 그렇다면 신부님께서 말씀하시는 일치와 화합이 대주교님의 사목방침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수평적 관계에서 그 사목방침이 적용되기 위해 만족해야 하는 저희 공동체 구성원의 동의는 어디에 있는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사목방침이라고만 말씀하시는 것은 수직적 관계를 강요하는 것이라 느끼고 있으며, 이것은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에도 위배되는 것이라 믿습니다.
 
대주교님께서 보내신 편지에 서비스라는 단어가 보입니다. 이것을 저는 이렇게 해석합니다. 대주교님께서는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이행하고자 노력하고 계신다고. 대주교님은 윤 신부님께서 집전하시는 미사 그리고, 여타 모든 것들을 신부님께서 저희에게 해주셔야 하는 서비스로 보고 계신다고 확신합니다. 비즈니스 상황에서 보면 저희가 고객이기 때문에 당연히 받아야 하는 것이란 것이겠죠. 제가 해석하는 것이 잘못된 것입니까? 그리고, 대주교님께서는 제가 보냈던 편지에 답을 주셨습니다. 이런 것이 서비스 아닐까요? 제가 보냈던 편지에 대한 신부님의 답장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 잘못된 것입니까?
 
두 번째, 교회의 본질이 교계제도가 아니라는 것은 가톨릭도 이제 민주적인 운영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지난 편지 때 저는 개신교의 장로, 집사 및 권사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시다시피 현재 민주주의는 대의 민주주의입니다. 바쁜 나를 대신할 사람을 뽑아 그 사람으로 하여금 대신하게 하는 것이 대의 민주주의입니다. 우리 역시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많은 피를 흘렸습니다. 유신독재의 시대와, 계속된 5공, 6공의 군인정치 시대를 겪었습니다. 그리고, 일방적이고 수직적인 체제의 모순을 몸으로 겪어 이젠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모두 알게 되었습니다.
 
간단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떤 조직이든 구성원 중 다수가 지지하면 대표성을 인정받게 되어 있으며, 그 구성원 중 누구도 특권을 행사하지 못합니다. 그 말은 누구나 1표 밖에 행사하지 못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저희 공동체는 분명 아이반호 공동체보다 산술적으로 두 배가 많은 신자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런 저희 공동체의 대표성을 인정하지 않고 계신 것은 아직도 신부님께서 수직적인 교계제도의 틀로 저희를 보고 계시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지난 네 번째 편지에서 드렸던 질문 들에 답을 주시기 바랍니다.
 
저희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신자들은 분열이 있을 당시 어찌할 바를 몰랐던 착한 신자들입니다. 어쩌면 방관이라고 말을 할 수 있겠지만 겪어보지 못했던 일 앞에 어떻게 행동해야 했는지 몰랐던 사람들입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고 분열을 조장했던 그 세력의 간계가 드러났습니다. 정의롭지 못함을 알아버렸습니다. 시간이 흘렀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느라 허덕이는 중간중간 무참히 난도질 당한 요셉 신부를 더 가까이 보호하지 못했음에 죄책감을 가지게 된 그들은 정말 착한 사마리아 인들입니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음직한 사건을 그들이 기획했고 실행에 옮겼습니다. 앞에 나와서는 밝고 희망찬 모습만을 말했던 그들입니다. 마치 장밋빛 청사진만을 보여주는 정치인들처럼 그들은 착하고 착한 저희 공동체 구성원들을 현혹시켰습니다. 그렇지만 진실은 언제나 밝혀지게 마련입니다. 어쩌면 요셉 신부가 당했던 그 많은 고통의 결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저희 공동체 구성원의 생각입니다. 이런 과거를 묻어둔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 다시 신부님에게 묻습니다. 그것은 과거가 아닙니다. 아픈 상처를 안고 사는 사람에게는 그 과거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이며 미래입니다. 그래서, 자꾸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신부님께서는 그것이 단순한 장애물처럼 보이실지 모르지만 저희에게는 크나큰 벽입니다. 그 벽은 저희가 쌓았던 벽이 아닙니다. 분열을 조장했던 세력이 쌓은 벽입니다. 그 벽을 저희더러 허물라고 하시면 그것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자행하는 폭력입니다.
 
결자해지라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이 고사성어 역시 저희 상황에 그대로 적용됩니다. 그 문제를 만들었던 사람이 다시 풀어야 됩니다. 그들은 저희 공동체 구성원 앞에 나와 지난 과거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저희에게 사죄해야 합니다. 그것만이 저희 앞에 드리운 벽이 없어지는 길입니다.
 
착한 사마리아 인은 누구도 못 본체 지나쳤던 강도 만난 그 사람을 간호하였습니다. 저희는 인지상정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입니다.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하는데 어찌 거부하겠습니까?
 
쌀쌀해진 이 겨울 신부님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아울러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이 저희 공동체에 구현되기를 갈망하며 성령으로 저희 아픔이 치유되기를 또한 기도합니다. 아멘!!
 
 
 
2010. 7. 4
 
최강찬 요한 비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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