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찬미예수님!!
안녕하십니까! 윤 신부님!!
비도 많이 왔고, 바람도 많이 불었던 한 주입니다. 겨울의 쌀쌀함이 뼈 속까지 파고드는 것은 어쩌면 저희 공동체가 맞고 있는 현실과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신부님께 드렸던 편지의 답장을 너무 기대했던 것인지 신부님께서 주신 한 장의 답변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일곱 번째 편지를 씁니다. 아마도 몇 번 더 쓸 것으로 예상 됩니다.
오늘 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교회 민주주의입니다. 새삼스럽게 들먹일 이유가 없는 것이 민주주의입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고, 학교에서 여러 해 동안 배웠고, 살면서 체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교회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쓴 이유가 있습니다. 신부님께서 지난 주에 전 신자들에게 주셨던 한 장의 답변서 때문입니다.
지난 편지 때 제가 몸 담았던 군대와 신부님께서 언급하신 교계가 무슨 차이가 있는지 저는 차이를 모르겠다고 했었습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군대는 민주주의라는 것이 통하는 집단이 아닙니다. 군인은 상명하복이 철칙이며 전쟁 아니 전투를 위해 길러지는 돼지와 같다는 것을 모두 압니다. 잔치를 위해 기르는 것이 돼지입니다. 군인 또한 전쟁을 위해 기르는 돼지와 같습니다. 그리고, 전쟁에서 죽는 것이 영광이라고 합니다.
이런 군대와 신부님께서 목숨처럼 지키려고 하는 교계가 어떻게 그리고, 무엇이 다른지요? 결국 같은 것이 아닙니까? 그렇기 때문에 대주교님의 제안이 사목방침이 되었고, 신부님께서는 저희 공동체의 의견은 들으려 하지 않으시고 대주교님의 사목방침을 받들고 계신 것 아니신지요? 정말로 제가 아무것도 모르는 것입니까?
제가 모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다 보니 이런 의문이 듭니다. 육군을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참모총장 밑에 군단장, 사단장, 여단장, 연대장, 대대장, 중대장 그리고, 최소 조직인 소대장이 있습니다. 대주교님을 육군 조직에 비교하면 군단장과 같습니다. 군단장이나 되는 직책에 있는 사람이 최말단 소대장에게 소대 행동지침을 내리거나 하는 일은 없습니다. 그럴 이유도 없습니다. 그래서도 안 되는 것이 군대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대주교님께서는 그런 사목방침을 내리게 되셨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과연 그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요? 가톨릭 교계라는 것이 이런 점에서 군대와 다른 것입니까?
군대의 선임하사는 선출직이 아닙니다. 지명직입니다. 마찬가지로 저희 공동체의 사목회장 또한 선출직이 아닙니다. 신부님께서 지명하셨습니다. 원활한 군대 운영을 위해 지명하는 것이 선임하사입니다. 마찬가지로 원활한 사목을 위해 지명하는 것이 사목회장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원활한 활동에 해가 된다고 생각하면 언제든 바꿀 수 있는 것이 지명직의 한계입니다. 어떻습니까? 군대와 저희 가톨릭의 교계가 비슷하지 않은지요?
제가 알고 있기로는 교회의 장로, 집사 및 권사는 선출직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는 교회의 체계가 더 민주적입니다. 교회의 운영이 목사의 독단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모든 신자들의 참여 속에 행정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모든 교회가 다 민주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되지는 않지만 저희 가톨릭보다는 분명 민주적이라고 말하는 데에 이의가 없다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원활하지 않다는 이유로 자기가 지명한 지명직 인사를 바꾸는 군대나 가톨릭보다는 분명히 절차적이며 민주적이기 때문입니다.
또 한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지난 편지 때 아이반호 공동체와 저희 공동체의 주보 발행부수에 대해 말씀 드렸습니다. 분명 외견상 두 배가 큰 것이 저희 공동체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저희 공동체의 사목회장 - 분명 신부님께서 지명하신 그 사목회장 -은 대주교님을 알현하는 자리에 참석하지 못합니다. 그 사실을 기반으로 저는 소설을 썼었습니다. 아이반호 공동체 구성원들이 성골이나 진골이라는 귀족이던지 아니면 대주교님께서 저희 공동체의 구성원이 미미한 것으로 알고 있을 것이라는 소설 말입니다.
그래서 교회 민주주의를 말씀 드립니다. 저희 공동체가 신부님께 사목회장을 선출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습니까? 제가 알기론 그런 적이 없습니다. 신부님께서 사목하시기 전에 신부님이 안 계시는 동안 선출한 적은 있습니다. 개신교회처럼 신부님이 계시는데도 불구하고 사목회장을 선출하려고 한다거나 그런 적도 없고 그렇게 혁신적이고 극단적이지도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저희 공동체가 무엇인가 잘못된 공동체라는 인식을 가지고 계셨고 지난 신자들과의 대화 시간에도 언급하신 것을 보면 그 옛날 빨갱이 사냥하는 것처럼 마녀사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저희 공동체가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인지요? 제가 이렇게 교회 민주주의를 말하기 때문에 문제가 있는 공동체입니까? 사목회장은 사목회장이기 이전에 평신도였습니다. 단지 봉사할 기회를 신부님께서 주셨기 때문에 다를 뿐입니다. 그 봉사는 신부님의 사목을 위한 보좌이기도 하지만 평신도들의 의견수렴 및 전달이라는 임무도 있습니다. 그것은 일반 신자 입장에서는 더 큰 임무입니다. 왜냐하면 신부님을 직접 대면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여건이 못되기 때문이죠. 이런 측면에서 저는 가톨릭의 교회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입니다.
저희 공동체 구성원 즉, 일반신자들의 의견을 신부님께 전달하는 사목회장이 신부님 입장에서는 잘못된 지명직 인사일 수 있습니다. 신부님의 사목방침을 신자들에게 전달하고 설득해야 할 사목회장이 거꾸로 일반 신자들의 의견만 수렴해 신부님께 전달하니 말입니다. 그렇지만 그가 꼭두각시입니까? 시키면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그런 사람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느끼기로는 저희 공동체를 위해 정말 열심히 일하고 있는 일꾼입니다.
과거의 일과 관계가 없는 제가 왜 과거에 연연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거꾸로 지난 과거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생각하시는 신부님을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우리들의 고국 한국은 잘못된 과거를 청산하지 못해 역사가 바로 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첫 단추를 잘못 꿰맨 이후 정의와 진리가 사라진 나라가 되었습니다. 친일을 찬미했던 사람이 친미을 외치고 있고 미국의 51번째 주로 편입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비아냥도 듣는 것이 현실입니다.
저희 공동체가 주장하는 바로 선 역사가 과거에 연연하는 것입니까? 과거에 연연해 하는 것이라 믿고 계신다면 무엇이 현재이고 정녕 어떤 것이 미래란 말씀입니까?
신부님께서 지난 답변에서 이렇게 질문하셨습니다.
" 신앙이 무엇이며?
왜 신앙생활을 하는가?
그리고, 자신과 하느님과의 관계는? "
현재 저희 공동체는 신앙생활에 문제가 없습니다. 왜 잘못을 저지른 자들에게 또 다시 저희 신앙생활을 방해 받아야 하는지 되묻고 싶습니다. 저희 자신과 하느님과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왜 그들이 저희와 하느님과의 관계를 문제 시 하는지 묻습니다. 왜 저희 각자가 가진 종교와 신앙의 자유를 침해 받아야 하는지 오히려 되묻습니다.
행복한 미래는 과거를 덮어 둔다고 해서 오는 것이 아님을 믿습니다. 정리되지 않은 역사는 꼭 반복하게 되어 있는 현실이 무서운 저는 저희 공동체의 아픔이 먼저 치유되기를 하느님께 빕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