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찬미예수님!!
오늘은 날씨가 좋았습니다. 맑고 청명한 날씨였고, 새벽엔 월드컵 16강 진출 소식도 들었던 기분 좋은 수요일입니다. 신부님께 다시 펜을 듭니다. 지난 주 저희 공동체 신자들과의 대화 시간에도 말씀 드렸지만 앞으로도 여러 번에 걸쳐 신부님께 편지를 드릴 예정입니다. 그리고, 신부님께서도 허락하셨지만 필요에 따라서는 대주교님께도 동일한 내용의 편지를 드릴 것입니다.
오늘 이야기 하려고 하는 것은 신부님께서 즉답을 해 주지 않으셨던 대주교님 알현 시 저희 공동체 대표도 참석하는 문제에 대한 것입니다. 내일이면 신부님께서 대주교님을 알현 하는 날로 알고 있는데, 아직도 아무 소식이 없음을 확인했습니다. 하여 작가적 상상 혹은 소설이라고 말씀하실 것 같은 편지를 이렇게 씁니다.
소설이라고 하면 제가 배운 바로는 허구입니다. 그렇지만 꼭 허구만은 아니겠죠. 작가 또한 사람이라 경험하지 못한 것을 완전히 창작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소설가의 남편이었던 사람은 이혼 시 자기가 그녀의 소설에 거론되지 못하도록 하는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한편으로 우리가 한국의 대작가라고 잘못 알고 있는 이문열 씨의 영화로도 제작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란 소설이 선배 작가인 황석영의 소설 "아우를 위하여"를 표절했다는 것을 알만한 사람은 다 압니다. 그만큼 창작의 고통이 심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죠.
제가 소설 이야기로 이 편지를 시작한 이유는 그 소설 같은 이야기가 어느 누군가 에게는 사실이기도 하고, 사실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신부님께서 즉답을 피하셨기에 제가 한번 소설을 써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이반호 공동체의 매주 주보 발행부수는 150매입니다. 저희 M/W 공동체의 주보 발행부수는 250매입니다. 대략 신자수가 산술적으로 두 배가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저희 공동체 대표인 사목회장은 신부님과 함께 대주교님을 만나 뵙지 못합니다. 전혀 대표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생각이 난 것인데, 지난 학창시절에 배웠던 신라시대 생각이 납니다. 그 시대에는 성골, 진골이 있었고 오직 그 출신만이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귀족이었다는 것이죠. 조선시대 또한 양반이라고 하는 사대부들만이 관직에 진출할 수 있었습니다. 민초들은 그저 들판의 이름 모를 꽃과 같다는 이야기였죠.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이곳 호주는 영국 이민자들의 후손들이 애보리진 들을 무참히 죽이고 세운 나라입니다. 그렇지만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가 채택하고 있는 민주주의를 피워낸 나라가 영국인 것으로 압니다. 그들은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합리성을 기초로 한 민주주의 국가를 만들었습니다. 어쩌면 그 민주주의 안에서 우리는 한국과는 다른 행복감을 맛보고 있다 생각합니다. 소설을 쓴다면서 왜 민주주의냐 하면 민주주의의 기본은 제가 알기로 1인 1표입니다. 예전엔 귀족이 1인 1표가 아니라 여러 표를 행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산술적으로 신자수가 두 배가 되는 저희 공동체 대표가 대주교를 알현하는 자리에 신부님과 동석하지 못하는 이유를 저는 이렇게 봅니다. 아이반호 공동체 신자들은 1인 3표를 행사할 수 있는 성골 혹은 진골이라고. 그렇지 않다면야 더 큰 공동체의 대표가 참석하지 못할 하등의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다른 소설을 써보면 이렇습니다. 대주교님께서 아시기로는 저희 공동체의 신자수가 50여명 미만이고, 아이반호가 250명일 것이란 겁니다. 그러니 당연히 저희 공동체 사목회장은 그 자리에 참석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대주교님께서 알고 계시다면 이런 상상을 하게 됩니다. 누군가 허위로 보고를 했거나 사실과 다른 편지를 계속 썼다는 이야기이겠죠. 그렇지 않고서야 대주교님께서 저희 공동체의 의견이 무엇인지 궁금해하지 않으실 리가 없습니다. 신자수도 두 배가 많은 공동체가 버젓이 존속하고 있음에도 그 공동체의 대표가 같이 오지 않음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으신 것은 이런 허위 보고 및 허위 사실을 진실이라 믿고 계시기 때문일 것이라 믿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대주교님 스스로의 사목방침이신 신자들에게 제공하셔야 하는 서비스를 잊으실 리가 없다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시는지요. 소설입니까? 아니면 사실입니까? 누군가는 소설이라고 말을 할 것이고, 누군가는 가슴이 뜨끔해질 것이며 누군가는 정말 맞는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소설 같은 이야기가 맞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면 그것이 사실 여부를 떠나 신부님 말씀대로 유언비어에 속고 사는 것이 됩니다. 유언비어를 잠재울 유일한 방법이 있습니다. 사람이 죽었다고 하면 살아 있음을 보여주면 되며, 사실이라고 알려진 거짓을 증명하기 위한 자료를 제공하면 유언비어는 봄눈 녹듯 자연히 없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작년에 있었던 가수 N씨의 방송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TV에 나와 바지를 내려 보여줘야 할 정도로 모든 사람이 그렇다고 알았기 때문에 그런 결정을 내렸겠죠. 어찌됐든 이 모든 것을 신부님께서는 유언비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난 주에 신부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객관적인 자료를 가지고 계시다면 보여주시면 모든 소동은 사라지게 되어 있다 믿습니다.
대주교님의 사목방침이 담긴 서신을 받게 된 신부님께서 보내신 신부님 명의의 편지도 공개하여 주십시오. 그것이 권한을 넘는 과도한 요구라고 말씀하신다면 그것은 제가 쓴 소설이 소설이 아니란 말씀입니다. 유언비어라고 알려졌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 사실이었다 밝혀지는 경우도 왕왕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저희가 아무리 배우지 못했다 하여도 그 정도는 판단하고 읽을 줄도 압니다.
일치와 화합이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분란이 일어난다면 그것을 일치와 화합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과거청산이 없는 미래는 영원한 갈등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살았던 고향 대한민국이 그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다 생각합니다. 건설적 미래를 향한 신부님의 결단을 애타게 기다리겠습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