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5.

2007. 12. 12. 오후 12:27:08

글자
용서 5-1: 반복

하느님의 자비로우신 용서

 

 

 

용서 5-2: 용서하시는 아버지

* 루가 15, 11-32

아버지는 아들을 받아 들였다: 그는 부드럽게 아들에게 입을 맞추었다. 

아들은 미리 준비한 대로 조심스럽게 자기의 죄를 시인하였다.

아버지가 아들을 포옹함으로써 그 아들은 환영과 용서를 받았으며 아들의

위치로 다시 회복되었다.

아버지는 벌거벗은 그이 몸을 제일 좋은 옷으로 입혀 아들의 명예를

회복시켰다.

반지를 받으므로 아들로서의 권위가 회복되었다.

신을 신으므로서 종이 아니고 자유인으로서 회복되었다.

큰아들이 '아버지의 다른 아들' 이라고 말하므로써 스스로 옳다고

믿는 태도 때문에 큰아들은 그이 동생뿐 아니라 그의 아버지하고도

사랑의 관계를 맺지 못하였다.

아버지는 큰아들도 또한 잃어버렸다: 큰아들 자신이 스스로 만든

외지로 그 아들을 잃어버린 것이다.

아버지는 작은 아들을 대했듯이 큰아들을 대하였다.

모두가 하느님 아버지의 아들과 딸인 우리가 서로에게 갖고 있는

모든 편견과 오해를 살펴보라는 훈명을 듣고 있는 것이다.

 

+구하는 은총

자의 죄스러움을 더욱 깊이 인식하고 보다 깊은 슬픔을 느낄 수

있는 은총을 구한다.

 

 

 

용서 5-3: 귀향

* 루가 15, 11-32를 다시 읽으시오.

어떤 의미에서 우리 각자는 우리 안에 두 아들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두 아들들처럼 우리가 그 어느 한 면에만 지나치게 치중할 때

위험이 따른다. 우리가 어느 한 아들 쪽으로 치우치는 순간에

다른 아들의 부정적인 요소의 공격을 받게 된다.

우리 안에 공존하는 두 아들의 요소를 화해시키는 것이 우리에게는

더욱 중요한 과제이다.

우리 자신 안에는 우리가 꿈꾸거나 상상했던 것 이상의 참으로

놀라운 가능성이 숨어 있다.

우리에게 '집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곧 우리의 하느님 아버지께

돌아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를 껴안아 주시는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우리는 조건 없이

받아들여지고 우리의 죄는 용서받는다.

우리 안에 산산이 부숴졌던 파편들이 다시 합쳐지고 우리는

새로운 삶을 체험하게 된다.

 

+ 구하는 은총

나의 죄스러움을 더욱 깊이 인시하고 보다 깊은 슬픔을

느낄 수 있는 은총을 구한다.

 

 

 

용서 5-4: 최후의 상실

* 히브리 10, 26-29

무지의 상태에서 죄를 짓는 것과, 알면서 일부러 악의를 가지고

죄를 짓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히브리서 저자가 말하는 "깨달음"은 우리가 갖고 있는 예수님께

대한 내적이며 체험적인 마음의 깨달음이다.

하느님의 사랑을 고의로 그리고 끝까지 거부한 것에 대한 대가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크다.

우리는 하느님을 향하든가 하느님을 거역하든가 선택해야 한다.

하느님을 전적으로 거부하는 것, 즉 죄을 선택하여 그 죄가

완전하게 이루어지도록 허영하는 것은 모든 것을 잃어 버리는 것이다.

 

+ 구하는 은총

지옥의 본질인 상실을 느낄 수 있는 은총울 규헌더, 그리하여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비전을 잃어버린 경우에라도 지옥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죄악에서 지켜줄 것이다.

 

 

 

용서 5-5: 최후의 상실2

* 히브리서 10, 26-29과 해설을 다시 읽는다.

+구하는 은총

넷째날과 같음

 

 

 

용서 5-6: 최후의 몰락

* 요한 묵시록 18, 2. 21-23

바빌론의 몰락의 깊이는 그 도시가 이전에 이룩한 성취와 창작의

높이에 비례한다.

유대의 예언자들에게 있어서 바빌론의 몰락은 단순히 외적인 정치적,

경제적 현상으로만 여겨질 수 없었다. 그것은 물질적인 자제력이

없었고 도덕적인 규율이 없었으며 종교적인 뿌리가 없었던 민족에게

닥쳐올 수밖에 없었던 필연의 결과였다.

우리가 정신을 차려서 우리의 현 시대가 얼마나 죄에 물들어 있고,

또 우리가 개인적으로도 어떻게 현 시대의 죄에 물들어 있는지 깊이

관상할 때 우리는 바로 이와 똑같은 역거움과 두려움을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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