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33 주간 목요일. 묵시록. 5,1-10;루카 19,41-44
우린 이번 한 달을 위령성월로 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 세월을 한번 쭉 영화필름처럼 돌이켜 보시겠습니까? 생각보다 그 세월이 참 짧다는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스쳐 지나가는 세월을 꽤 무감각하게 보냈다는 생각이 드실 것입니다. 예전에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죄를 지을 때마다 스스로 손상시키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다면 결코 죄를 짓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은 애석하게도 스스로에게 무엇을 행하고 있는지를 조금도 의식하지 못할 만큼 너무나 큰 무감각 상태에 빠져 있다.” 라고요... 매번 기도를 통해, 삶의 체험을 통해 스쳐지나가는 많은 사람들을 통해, 많은 것을 접하지만 우린 그 삶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할 때가 참으로 많아 보입니다. 오늘 복음 이야기는 70년경 예루살렘 성전이 멸망했을 당시를 저술하면서 예수님 시대로 비추어보는 특이한 구성을 띄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마지막을 서술합니다. “하느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라고요. 자신의 유대교 종교가 중요한 듯 여겼지만 실은 로마에의해 그 성전이 파괴된 것을 보면서, 오늘의 신앙을 살아가는 나는 과연 나의 신앙을 믿음으로 인해 주위 사람들에게 얼마나 좋은 인상을 남기고 있는 지 바라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전이 파괴된 것처럼 우리 자신도 무감각하게 보내다가 얼마든지 파괴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제 동아일보에 이런 기사가 났습니다. 지난 달 만 20세 이상의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2008 한국 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 를 했답니다. 그 중 가톨릭교회에 대해서는 35.5%가, 믿을만하고 불교는 31.1% 그리고 개신교회는 18%만이 신뢰한다고 조사되었답니다. 우리의 퍼센트 수치가 높다고 좋아할 일은 아닙니다. 교리가 다르고 믿는 신이 다르다 하더라도 우리가 믿는 종교가 남을 미워하기에는 충분한 종교를 가지고 있으면서 남을 사랑하기에는 모자라는 종교를 믿고 있다면, 분명 다시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알렐루야는 이렇게 노래됩니다. “오늘 주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너희는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마라” 라고요... 나의 삶을 그저 무감각하게 보내기보다 하나하나 짚어갈 때 나의 신앙도 반짝 반짝 윤이 나는 보석처럼 되어갈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