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어제 10구역 안덕현 돈보스코 형제님께서 ‘선종’하셨습니다. 형제님께서는 ‘루게릭’병으로 1년 6개월 정도 투병생활을 하셨습니다. 가족들과 주위에서 세례를 받도록 권유를 하셨지만 하느님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분이셨습니다. 그러던 중 지난달에 면담을 하였고, 형제님께서는 하느님을 믿겠다고 하셨습니다. 앞으로 교리를 받는 조건으로 세례를 드렸습니다. 1달 정도 교리를 받으신 형제님께서는 지난 3월 봉성체 때 처음으로 성체를 모실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제 병세가 심해지셔서 ‘병자성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어제 선종하셨습니다.
그분이 처음 모셨던 성체가 그분 삶에서 마지막으로 모신 성체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분께서 마지막으로 모신 성체는 하느님께로 가는 길에 큰 힘이 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세상의 어떤 지식보다, 세상의 어떤 재물보다, 세상의 어떤 권력보다 소중한 주님의 성체를 모셨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처음 참례하는 미사가 본인을 위한 장례미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부활 8일 축제기간 중에 선종하신 안덕현 돈보스코 형제님께서 천상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시기를 기도합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행복과 평화는 비슷한 말입니다. 행복한 사람은 평화로울 수 있고, 평화로운 사람은 행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고 하신 말씀은 평화를 이루는 것이 힘들고 어렵기 때문입니다. 행복에 이르는 것이 힘들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평화를 바라고, 행복을 원하지만 현실의 삶에서는 평화롭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평화롭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생각합니다.
첫째는 욕심 때문입니다. 욕심은 바닷물을 마시는 것과 같아서 채우면 채울수록 더욱 갈증을 느끼게 됩니다. 재물을 많이 가져도, 명예를 얻어도, 권력을 얻어도 그것만으로는 참된 평화를 느끼기 어렵습니다.
둘째는 분노와 원망입니다. 내가 건강하지 못한 것을, 내가 사업에 실패한 것을, 내가 시험에 떨어진 것은 부모를 잘못 만나서, 이웃을 잘못 만나서, 시기를 잘못 만나서라고 생각하면 평화를 느끼기 어렵습니다.
셋째는 근심과 걱정입니다. 제자들은 근심과 걱정이 있었습니다. 자신들도 예수님처럼 잡혀서 십자가를 지고 갈지도 몰랐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어도 근심과 걱정이 있는 사람은 평화로울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평화롭지 못한 이런 조건들을 다 극복하셨기 때문에 제자들에게 평화를 나누어 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들이셨지만 모든 권한과 능력을 기꺼이 포기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삶은 무언가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의 것을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친구가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를 가주라고 하셨고, 벗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고 하셨습니다.
‘영성이란 정상을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정상을 향해 가는 과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부활의 삶은 죽은 후에 얻어지는 것만은 아닙니다. 지금 여기에서 부활의 삶을 사는 사람은 현실의 삶에서 이미 부활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선종하신 안덕현 돈보스코 형제님께서는 비록 신앙생활은 짧게 하셨지만 욕심을 버리고, 분노와 원망을 털어버리고, 근심과 걱정을 날려 보냈기에 참된 평화를 얻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들 또한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받아들여 부활의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