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부터 교회는 ‘예수님의 수난, 고통, 죽음’을 특별히 기억하는 성주간을 지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같은 동족인 유대인들에게 고발을 당하였고, 로마의 총독이었던 빌라도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모독하였다는 혐의로, 로마의 통치에 반대하는 폭동을 일으키려 했다는 혐의로’ 고발을 당하였고,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신앙 안에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였지만, 사회의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았고, 권력을 가진 사람에 의해서 죽으셨습니다. 신앙은 더불어 살아야 하는 사회와 정치와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음을 예수님의 죽으심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긴 수난 복음을 함께 읽었습니다. 복사를 서는 아이들에게는 다른 날과는 달리 미사 시간이 길고, 서있는 시간이 많아졌다는 느낌 일 것입니다. 왜 우리가 주님의 수난 복음을 길게 읽어야 하는지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주간을 지내면서 주님의 수난 복음을 함께 읽으면서 어떤 생각을 해야 할까요? 나뭇가지를 들고 예수님을 환영하던 백성들과 같은 마음으로 우리는 성지를 들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예쁘고 좋은 가지를 고르려고 합니다. 그러나 성지는 예쁘고 좋은 것을 고를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그 의미를 알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우리는 오늘 축성된 성지를 고상위에 걸어 놓을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1년 동안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할지를 성지가 달린 고상을 보면서 묵상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홀로, 고독하게 피땀 흘려 기도하시는데 제자들은 예수님의 그 마음을 모르고 있습니다. 마치 오늘 미사가 길어서 지루하다고 느끼는 아이들과 같습니다. 제자들은 누가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를 가지고 논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3번이나 모른다고 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유다는 주님께 배반의 키스를 날렸습니다. 나뭇가지를 들고 환영하던 군중은 십자가에 매달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외롭지 만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고난의 길을 가실 때, 예수님께 위로를 드린 사람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키레네 사람 시몬’입니다. 십자가의 길 5처에는 시몬이 예수를 도와 십자가 짐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성서를 읽어보면 길을 지나가는 키레네 사람 시몬에게 강제로 십자가를 지우게 했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 시몬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가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그 십자가를 지면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성서에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삶을 살아가면서 다른 이의 짐을 대신 지고 갈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우리들 주면을 돌아보면 우리는 이렇게 남의 짐을 기꺼이 지고 가는 사람을 발견하게 됩니다. 10년 이상 장애인들을 위해 차량 봉사를 하고 계시는 택시 기사 아저씨, 헌혈증을 가져오면 국밥을 공짜로 주면서 그 헌혈증을 모아 백혈병으로 투병하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식당 아저씨, 매주 쉬는 날이면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위해서 머리를 손질 해주는 미용실 자매님, 환경 미화원 아저씨가 잠시 들리면 어김없이 소주 반병에 따끈한 오뎅 국물을 주시던 포장마차 아저씨.
정말 많은 분들이 우리의 짐을 져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나의 삶에서 주어지는 타인의 십자가가 있다면 우리는 그 십자가가 골고타 언덕을 오르시던 주님의 십자가라 생각하면서 함께 지고 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둘째는 ‘베로니카 성녀’입니다. 십자가의 길 제 6처는 성녀 베로니카, 수건으로 예수의 얼굴 씻어 드림을 묵상합니다. 성서를 읽어보면 베로니카가 예수님의 얼굴을 수건으로 닦아주는 내용은 없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성녀 베로니까는 예수께서 갈바리아 산으로 십자가를 지고 가실 때, 예수님의 얼굴에서 흘러내리는 피땀을 닦아 준 예루살렘의 어느 부인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옷으로 성면을 씻었는데, 나중에 살펴보니 거기에 주님의 모습이 박혀있었다고 합니다. 루가 복음 19장 1절~10절에 언급된 세리 자케오의 부인과 마태오 복음 9장 20절~22절에 언급된 12년 동안이나 하혈병을 앓다가 예수님의 옷깃을 만짐으로써 치유 받았던 부인이었다는 전승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것이 진실인지 자세히 규명할 만한 자료는 없는 실정입니다.
본당 신부님이 아무리 훌륭해도, 본당 신부 혼자서는 사목을 잘 하실 수 없습니다. 본당 신부님을 도와서 함께 하시는 분들이 있어야 합니다. 정말 많은 분들이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 드렸던 베로니카처럼 본당의 일에 도움을 주었고, 협조하였으며 기도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베로니카처럼 주님을 도와 드리고, 이웃을 도와 드리고, 본당의 일에도 도움을 주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어제 본당 대청소에 많은 분들이 함께 해 주셨습니다. 주님의 얼굴을 닦아 드리는 마음으로 성당 구석구석을 깨끗하게 청소하였습니다.
셋째는 ‘십자가상의 다른 죄인’입니다.
그는 주님 오늘 낙원에 가시면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 한마디의 말로 그는 죄 사함을 받았고, 천국으로 갔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계신 분들 중에 나는 안 되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눈에 천년도 하루 같고, 우리의 인생은 아침에 피었다 지는 이슬과 같은 것입니다. 하느님 앞에 시간의 길이가 무슨 의미가 있으며, 인생의 길이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다만 예할 것은 예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께 위로를 드렸던 사람들처럼 우리들도 우리의 삶을 통해서 주님께 위로를 드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아픔과 슬픔을 함께 나누며, 고통 중에 있는 이들에게 위로를 드려야 합니다. 삶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두려워하거나, 걱정하지 말고, 주님과 함께 충실하게 주어진 길을 가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