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본당 승합차를 타고 나바위 성지엘 다녀옵니다.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승합차를 마련할 수 있었고, 앞으로 공동체를 위해서 유용하게 쓰일 거라 생각합니다. 안전한 운행이 될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승합차의 구입과 함께 본당에서는 작은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모니카 회원들이 물품을 판매할 매장을 만드는 중입니다. 지난 2년간 모니카 회원들은 ‘본당 부채 상환’을 위해서 물품 판매를 밖에서 하였습니다. 눈이 올 때도, 비가 올 때도, 겨울 추운 날에도, 여름 무더운 날에도 정성껏 물품을 판매하였습니다. 이제 작고 아담한 매장을 만들려고 합니다. 소성전에는 도서실과 작은 방을 하나 꾸미려고 합니다. 20명 정도 되는 모임을 위한 회의실을 만들고, 교우들께서 오셔서 책을 읽을 수 있는 도서실을 꾸리려고 합니다. 책은 저도 기증을 하려고 하고, 교우들께서 기증을 하시면 함께 읽어 영적으로 성장할 책들이 가득하리라 생각합니다.
러시아의 시인 푸시킨은 이렇게 아름다운 시를 남겨 주었습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두려워하거나 슬퍼하지 말라
슬픈 날엔 참고 견디라
즐거운 날은 오고야 말리니
현재는 한없이 우울한 것
마음은 미래를 바라느니
모든 것 하염없이 사라지나
지나가 버린 것 그리움이 되리니”
푸시킨의 시가 생각나는 아름다운 글을 읽었습니다. 오늘은 그 글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요르단이라고 하는 나라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송백나무가 자랍니다. 송백나무는 굉장히 비싸고 향이 아주 좋습니다. 그중에 세 그루의 송백나무가 모여서 자기들의 희망을 얘기했데요.
첫 번째 나무는 언젠가 내가 베어진다면 예루살렘으로 가서 예루살렘 성전에 있는 화려한 제대가 되는 것이 나의 꿈이다. 많은 사람들이 제대 앞에서 경배를 드리면서 나의 모습에 존경을 표하게 하고 싶은 것이 바로 내 소망이며 그것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다. 두 번째 나무는 자기 소망은 ‘내 꿈은 사람들을 섬기는 것이다. 나는 넓은 바다를 왔다 갔다 하는 큰 배가 되어서 검푸른 지중해를 가로지르면서 사람들을 실어 나르면서 봉사하는 것이 나의 꿈이다.’ 세 번째 나무가 두 나무의 얘기를 듣더니 ‘나는 베어지는 것을 원치 않아. 나는 이 자리에서 하늘로 쭉쭉 뻗어서 큰 나무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내 그늘로 들어와서 쉬었다 가는 나무가 될 거야, 사람들이 내 큰 키를 쳐다보다가 하늘을 쳐다보게 되고, 그래서 하느님을 알게 되는 그런 나무로 내 여생을 마치고 싶다.’
세월이 흐른 어느 날, 도끼가 첫 번째 나무 밑에 와서 닿습니다.
첫 번째 나무는 마음이 아팠지만 소망이 이루어지는 희망으로 자기의 몸이 부서져도 기쁘게 그 고통을 달게 받았어요. 첫 번째 나무는 목공소로 옮겨져서 목수들이 열심히 나무를 자르고 대패로 파내고 하면서 모양을 다듬는데 보니 초라하기 이를 데 없는 말들이 먹이를 먹는 말구유를 만들어놓은 거예요. 예루살렘 대성전의 제대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첫 번째 나무는 너무너무 창피하고 부끄러워서 자살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습니다. 첫 번째 나무의 꿈은 이렇게 산산이 부서졌습니다.
두 번째 나무도 도끼에 드디어 찍혔습니다. 두 번째 나무도 잘리는 아픔이 있었지만 희망을 가졌습니다. ‘드디어 내가 범선이 되어 오대양 육대주를 다니면서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큰 배의 한 부분이 될 수 있구나.’ 아니나 다를까? 자기를 옮기는 데 보니 배를 만드는 선박소로 보내는 거예요. 열심히 인부들이 이 나무를 켜고 자르고 할 때, 이 나무는 그 선박공장안에서도 열심히 기도했어요. 이 두 번째 나무는 ‘주님, 배 만드는 공장까지 왔으니 내 마지막 소원은 물 밑에서 사람들의 방향을 잡아주는 키가 되고 싶습니다.’ 나중에 보니까 큰 배는 커녕 갈릴리 호수를 왔다 갔다 하는 쪽배, 그야말로 바람이 조금만 불면 흔들흔들 넘어가는 작은 배에 한 부분이 된 거예요. ‘야~ 나는 큰 배가 되고 싶었는데 이렇게 초라하기 이를 데 없는 쪽배가 되다니.’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럽니다.
세 번째 나무는 그가 바라던 대로 오랫동안 그 언덕에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세 번째 나무도 잘려서 예루살렘으로 가게 되었는데 이 나무는 뭐로 변했느냐? 죄인 중에 큰 죄인을 처형하는 십자가 나무로 변했습니다. 이 세 번째 나무의 꿈은 많은 사람들이 그늘 밑에 와서 쉬게 하고 하느님을 알게 해주는 것이 소원이었건만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흉악범 중에서도 제일 흉악범들의 피를 말려 죽이는 사형틀, 그 흉물덩어리가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이 세 번째 나무도 정말로 죽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슬픈 현실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내 꿈이 산산이 부서지고 내가 이렇게 비참한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어느 거룩한 밤, 여관을 찾지 못한 산달이 다 된 부부가 들어왔고 산고의 고통을 겪으면서 눈이 부시게 보기에도 찬란한 아주 아름다운 아기가 태어났는데 그 아기를 바로 자기의 집, 구유 위에다 올려놓는 것이었습니다. 그 아기가 바로 메시아였습니다. 지금까지 어떤 성전도, 세상에 아무리 화려한 제대도 이 같은 명예를 얻은 적이 없었습니다. 첫 번째 나무의 꿈은 예루살렘 성전의 제대가 되는 것이었으나 그리고 그 꿈이 실패했다고 생각했으나 구유가 된 이 송백나무는 메시아를 자기 품안에 안을 수 있는 이런 엄청난 명예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로 고깃배가 된 나무는 자기의 존재를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며 갈릴리의 고깃배가 된 자기의 신세를 한탄하고 살았습니다. 그 배는 사도 베드로의 배였습니다. 어느 날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그 작은 배에 오르셨습니다. 자신의 몸뚱이를 발판으로 해서 세상을 향해 설교를 하는 주님의 발판이 되었다고 하는 그 영광은 아무리 큰 배라고 해도 누릴 수 없는 큰 기쁨이었던 것입니다.
십자가 나무로 변한 세 번째 송백나무는 항상 자기 자신을 저주하고 살았습니다.
어느 날 하느님의 아들 메시아가 바로 자기 몸뚱아리를 어깨에 짊어지고 골고다 산을 오르셨고, 십자가에 기대어 한 많은 서른세 살의 삶을 끝마치면서 주님의 그 성혈이 그 십자가에 죄인의 피가 아닌 하느님의 피, 성혈이 자기의 십자가를 다 덮었던 겁니다. 이 십자나무는 그 후부터 이천년 동안 어느 신자 집에 가나 어느 교회에 가나 그 나무의 모습을 본 딴 십자가 나무가 걸려있고 그전까지는 십자가나무는 사람을 죽이는 흉물덩어리였지만 주님이 매달리신 그 다음부터는 구원의 상징, 희망의 상징이 되었고, 사탄을 이기는 그러한 영적인 무기가 바로 십자가였던 겁니다.
이처럼 계곡에 서있던 세 그루의 평범한 나무들은 그 꿈들이 산산이 부서지면서 실패한 것처럼 보였지만 참으로 거룩하고 영광에 넘치는 사명을 감당하게 되었던 겁니다. 교우여러분! 우리는 우리 자신의 짧은 생각을 가지고 자신의 인생은 무의미하다. 무가치하다! 이 세상에 나만큼 불행한 사람은 없다! 나는 하는 것 마다 안 되고, 실패한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자기의 삶을 저주하거나 체념하거나 좌절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우리가 예수그리스도 안에만 같이 머물고 있다면 비록 이 세상에서는 이름 없는 자였지만 하느님 안에서는 드높임을 받는 자가 될 것이요. 이 세상에서는 죽은 자처럼 살았지만 하느님 안에서는 살아 있는 자가 될 것이요. 이 세상에서는 슬퍼하면서 눈물로 한평생을 지낸 사람이었지만 하늘나라에서는 하느님께 위로를 받고 기쁨을 받는 그런 자로 변화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순간부터 영광스럽게 제대가 되겠다고 하는 허망한 생각, 헛된 세상 것을 쫓지 말고 베들레헴의 구유로 살아가겠다고 하는 것이 우리 신자들의 겸손입니다. 내 안에, 구유통 안에 온갖 음식찌꺼기 때로는 말과 소가 오줌을 싸더라도 나는 주님이 머무셨던 구유처럼 우리 공동체 안에서 가장 작은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이 하기 싫은 것, 더러운 것 바로 내 차지다! 하는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셔야 됩니다.
오늘 이 순간부터 커다란 범선이 되어서 사람들 앞에 자기의 모습을 뽐내는 그런 범선이 아니라 갈릴리 호수의 작은 고깃배처럼 예수님 발판을 되려고 노력하십시오. 주님이 나를 딛고서 세상을 향해서 복음을 전파하는 주님의 도구가 되도록 애쓰십시오.
나에게 주어지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께서 지고가신 십자가였음을 생각하고, 키레네 사람 시몬처럼 지고 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얼굴에 흐르던 피와 땀을 닦아 주었던 베로니카처럼 우리들 십자가를 지고 가며, 다른 이들의 십자가 까지도 함께 지고 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어제, 김동춘 신부님께서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이란 주제로 사순특강을해 주셨습니다. 좋은 말씀, 수요일에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주님 사랑 가득한 하루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