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3주간 화요일

2010. 3. 9. 오전 10:30:34

글자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6월에는 지방선거가 있습니다. 정부에서는 선거에 출마하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얻어먹으면 수십 배에 해당하는 벌금을 부과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젊은 학생들이 선거에 출마하려는 사람에게 점심을 얻어먹고 수백만 원의 벌금을 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선거에 출마하는 사람은 다급한 마음에 돈을 써서라도 표를 얻으려고 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식사를 얻어먹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칫 잘못하면 큰 낭패를 볼 수 있습니다. 선거에 출마하려는 사람들과의 식사는 될 수 있는 한 피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모임이 있어 회식을 할 때도 잘 모르는 사람이 돈을 내지 않도록 해야 겠습니다.

운동 경기에는 ‘퇴장, 실격’이라는 규칙이 있습니다. 심판의 권위는 크기 때문에 심판의 판단에 따라서 선수는 퇴장을 당하기도 하고, 실격을 당하기도 합니다. 심판은 선수를 보호하기 위해서, 게임을 정당하게 진행하기 위해서 ‘퇴장이나 실격’과 같은 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이기고 싶은 욕심에 규칙을 어기는 선수들이 있기 때문에 이런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교통 법규에도 ‘음주운전, 중앙선 침범’과 같은 행위는 엄중하게 제제를 가하고 있습니다. 본인은 물론 타인의 생명에도 지장을 주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께 ‘용서’에 대해서 질문을 하였습니다. ‘형제가 잘못하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이면 되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처벌과 제제는 법과 규칙의 문제입니다. 사회는 이와 같은 법과 규칙이 있어야지 질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용서는 양심과 내적인 자유의 문제입니다. 처벌과 제제는 질서를 유지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마음의 평화를 주거나, 상처를 치유해 주지는 못합니다. 용서는 마음의 평화를 주기 때문에, 내적인 상처를 치유해 주기 때문에 필요한 것입니다.

제가 아는 자매님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손자를 불의의 교통사고로 잃었습니다. 세상을 비관한 젊은이가 술을 마시고 운전을 하였고, 손자는 그 차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젊은이는 처벌을 받아 감옥에 갔습니다. 그러나 가족들은 손자를 잃어버린 슬픔에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습니다. 자매님은 가족들과 함께 대화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감옥에 있는 젊은이를 찾아가서 ‘용서’를 해 주기고 했습니다. 용서를 한 후에 가족들은 조금씩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고, 상처가 치유되었다고 합니다. 용서는 상대방을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용서는 나의 마음을 안정시켜 주고, 나의 상처를 치유해 주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宗敎란 으뜸가는 가르침이라는 한자라고 합니다.
Religion은 엉킨 실타래를 푸는 의미가 있는 영어라고 합니다. 으뜸가는 가르침으로 세상사의 엉킨 실타래를 푸는 것이 종교라면 그리하여 해탈의 경지에 이르고, 그리하여 참된 구원의 문에 도달 하려면 꼭 是非를 가려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법과 규정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도 용서와 사랑으로 해결되는 것을 봅니다. 오늘 나에게 주어진 갈등과 아픔이 있다면 그것 까지도 놓아버리고 하느님의 크신 사랑을 따라서 용서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댓글 2

  • 2010년 3월 9일 오후 5:08

    용서는 상대방을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용서는 나의 마음을 안정시켜 주고, 나의 상처를 치유해 주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아멘

  • 2010년 3월 9일 오후 10:30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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