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번 동계 올림픽을 통해서 가장 많이 듣던 이름이 있습니다. 김연아 선수는 워낙 많이 알려졌기 때문에 굳이 동계 올림픽을 통해서 알려진 것은 아닙니다. 스피드 스케이팅의 ‘모태범, 이승훈, 이상화, 이정수’선수입니다. 사실 저는 이번 올림픽에서 선수들이 메달을 따기 전까지는 그런 선수가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메달을 딴 후에 선수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스피드 스케이팅이 국민들에게 알려지게 되어서 기쁨니다.’ 본인들의 성적과 본인들의 기쁨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자신들이 출전하는 ‘스피드 스케이팅’이 알려지는 것이 더 큰 기쁨이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 이번 올림픽을 통해서 드러난 것이 있습니다. 메달을 딴 대부분의 선수들이 ‘1989년 생’들입니다. 이 세대의 선수들은 기성세대가 가지고 있던 생각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기성세대는 ‘가난, 두려움, 긴장, 열등감’이 있었습니다. 키가 크고, 잘 사는 외국 선수들과 경기를 해서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을 거의 하지 못하였습니다. 어쩌다 게임에서 승리를 해도 그것은 거의 기적에 가깝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게임에서 이기고 나서도 그 기쁨을 드러내기 보다는 ‘대통령과 국민’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먼저 하였습니다.
하지만 1989년생들은 생각이 달랐습니다. 한국은 이제 더 이상 전쟁의 폐허위에 가난한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아시안게임, 올림픽, 월드컵 게임을 유치하면서 주눅 들지 않았습니다. 경제가 성장하면서 아이들의 체격과 키도 서양의 아이들과 비슷해졌습니다. 젊은이들은 긴장하지 않았고, 웃을 수 있을 때는 즐겁게 웃었습니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순간에도 그 기쁨을 즐길 줄 알았습니다. 스포츠는 더 이상 가난을 극복하는 수단이 아니 였습니다. 스포츠는 축제이고, 잔치이며 놀이가 되었습니다.
우리들의 신앙도 생각해 봅니다. 저는 5대째 천주교를 믿는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박해를 받았고, 신앙을 갖는 다는 것은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도 있는 결단이었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생명까지도 잃어버릴 수 있는 것이 신앙을 갖는 것이었습니다. 신앙인들은 그러기에 신앙을 드러낼 수 없었습니다. 박해를 피해서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야 했으며 기와를 굽거나, 옹기를 만들어서 생계를 유지해야 했습니다. 신앙인들은 배움의 기회가 적었고, 사회에서도 드러내놓고 신앙인이라고 말을 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한국의 가톨릭이 드러나지 않는 소수에서 우리 사회에 빛과 소금이 될 수 있었던 것은 1980년대부터입니다. 1981년 조선교구 설정 150주년 대회가 여의도에서 성대하게 개최되었습니다. 1984년도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방한하셨고, 103위 성인들의 시성식이 있었습니다. 1989년도에는 세계 성체대회가 있었고, 교황님께서는 다시 한 번 한국을 방문하셨습니다. 명동 성당은 가난한 이들, 억눌린 이들, 불의한 권력에 의해 쫓기는 이들이 마지막으로 찾아가는 ‘희망과 위로’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세례를 받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였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종교를 갖는다면 ‘가톨릭’을 갖겠다고 말을 하였습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은 한국 교회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가톨릭교회의 엄숙함과 수도자들의 청빈하고 정결한 생활은 고독한 현대인들에게 잃어버린 자아를 생각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올림픽에서 우리의 신세대들이 당당하게 경기에 임하고, 메달을 딸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노력과 땀도 있었지만 가난과 헐벗음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열심히 일을 하였던 기성세대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비록 못 먹고, 못 입어도 자식들에게만은 가난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부모님들의 열정과 자녀들의 교육에는 모든 것을 아끼지 않았던 희생이 있었습니다. 한국교회가 오늘날 이렇게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었던 것도 순교자들의 피와 땀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세상의 가치와 세상의 즐거움 보다는 하느님의 뜻을 먼저 따르고 , 하느님나라가 임하시기를 바라는 이름 없는 순례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서 말씀의 주제는 ‘하느님의 영광’입니다. 오늘의 제1독서는 아브라함의 이야기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약속하셨습니다. ‘나는 이집트 강에서 큰 강, 곧 유프라테스 강까지 이르는 이 땅을 너희 후손들에게 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아브라함의 믿음과 아브라함의 순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거룩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율법의 대표인 모세와 예언자들의 대표인 엘리야’를 보았습니다. 율법과 예언은 예수님의 거룩한 모습을 통해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비록 외롭고 힘든 여정이지만 예수님을 충실하게 따르면 예수님처럼 영광스럽게 될 것이라고 미리 보여주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영광을 보고, 참된 신앙의 길을 가기위해서는 지금 눈에 보이는 것을 따라가서는 안 된다고 오늘 바오로 사도는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미 여러분에게 자주 말하였고 지금도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는데,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의 끝은 멸망입니다. 그들은 자기네 배를 하느님으로, 자기네 수치를 영광으로 삼으며 이 세상 것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늘의 시민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비천한 몸을 당신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우리를 유명하게 하고, 영광스럽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지고 가신 십자가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영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