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어제는 하루가 길었습니다. 6시에 새벽미사, 7시에 장례미사, 10시 미사가 있었고, 김명숙 요안나 자매님의 장례미사를 마치고, 장지까지 가시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저녁7시에는 ‘십자가의 길’기도가 있었습니다. 저녁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하면서 교우분들을 보았습니다. ‘새벽미사, 장례미사, 장지봉사, 십자가의 길 기도’에 모두 함께하신 분들도 계셨습니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기도와 봉사의 생활을 하는 분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홍보가 덜 되어서인지, 어제 십자가의 길 기도에는 많은 분들이 함께하지는 못했습니다. 사순시기를 지내면서 본당에서 함께하는 십자가의 길 기도에 좀 더 많은 분들이 함께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술푸게 하는 세상’이란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술에 취한 취객이 취중에 하는 말을 소재로 하는 프로입니다. 대사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이 있습니다. ‘1등만 기억하는 세상’이라는 말입니다. 은연중에 고등학교의 서열은 서울대학교에 많이 입학 시킨 순서로 정하는 것을 봅니다. 학생들에게 ‘된 사람, 난 사람, 든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던 선생님들을 찾아보기가 힘들어집니다. 어릴 때 선생님께서는 그 중에서 ‘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의 교육은 ‘알몸으로 졸업식 뒤풀이’를 하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학교도, 사회도 어쩌면 1등만 기억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들을 축하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메달을 따지 못했어도,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한 모든 선수들은 함께 축하를 받아야 합니다. 스피드 스케이트의 ‘이규혁’선수는 메달을 따지 못했지만 동료 선수들이 모두 사랑했고, 오늘날 한국 스피드 스케이팅이 이렇게 발전 할 수 있었던 것은 이규혁 선수가 맨 앞에서 거센 바람을 막아 주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규혁 선수에게 그동안의 노고와 희생을 위로해 주고 있다고 합니다. 참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세상은 ‘1등만 기억하는 사회’를 향해서 쉴 새 없이 뛰어갈 것입니다. 일등, 일류는 성공과 출세의 보증서와 같고, 편안함과 부유함을 약속해 주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세상은 성적순으로, 능력순으로 서열을 정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꽃밭에 여러 종류의 다양한 꽃들이 꽃밭을 아름답게 만들듯이, 우리의 세상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야합니다. 행복은 소유의 크기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행복은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고, 감사하며, 기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일등만 기억하는 사회가 아니라, 넘어진 사람, 실패한 사람, 고통 중에 있는 사람도 기억하고 함께 어깨를 보듬고 살아가는 사회가 진정 행복한 사회입니다.
오늘의 성서말씀은 우리가 추구해야할 세상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굶주린 이에게 네 양식을 내어 주고, 고생하는 이의 넋을 흡족하게 해 준다면, 네 빛이 어둠 속에서 솟아오르고, 암흑이 너에게는 대낮처럼 되리라. 너는 오래된 폐허를 재건하고, 대대로 버려졌던 기초를 세워 일으키리라. 너는 갈라진 성벽을 고쳐 쌓는 이, 사람이 살도록 거리를 복구하는 이라 일컬어지리라.”
바리사이파와 율법학자들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하는 예수님이 못 마땅했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오늘날 우리가 추구하는 것처럼 일등만 기억하는 세상을 원했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