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5주일

2010. 2. 7. 오전 8:33:28

글자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 주일에는 ‘예비자 교리’를 받는 분들과 면담을 하였습니다. 이제 한 달 후면 세례를 받기 때문에 면담을 하면서 몇 가지를 확인하였습니다. ‘세례명은 정하였는지, 대부모는 정하였는지, 혼인 조당은 없는지, 가족들은 성당에 다니는지’ 대화를 통해서 확인을 합니다. 지난주에 한분은 조금 특별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신부님! 제가 꼭 성당에 다녀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믿음에 대한 확신도 점점 사라집니다. 누구에게 기도를 해야 합니까? 하느님입니까? 성모님입니까?’ 아직 세례를 받지 않았지만, 그 자매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신앙생활을 오래한 분의 고민과 같았습니다.

하나하나 설명을 해 드렸습니다. 밥이 ‘뜸’도 들지 않았는데 먹으려고 하면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없듯이 함께 신앙을 배워가자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좋은 옷도 처음에는 몸에 잘 맞지 않기 때문에 불편하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조금 입다보면 옷이 몸에 익숙해지기 마련이라고 하였습니다. 가톨릭교회는 처음에는 복잡한 것 같지만 익숙해지면 아주 친숙해 질 거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자매님께서는 기뻐하셨고, 제게 핸드폰 번호를 알려 달라고 하셨습니다. 아직 세례를 받지 않았는데도 신앙에 대한 회의를 할 정도였으니, 앞으로 신앙생활을 더 잘 하실 거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샘이 깊어야 물이 마르지 않고, 뿌리 깊은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듯이’ 고민을 깊이 한 그 자매님은 굳센 신앙을 가지리라 생각을 하였습니다.

예비자들의 면담을 하면 성당에 오는 유형이 크게 4가지 정도가 있습니다.
첫째는 누군가의 권유에 의해서 오는 분들입니다. 가족, 친지, 이웃의 권유가 있어서 성당엘 찾아오신 분들입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처럼 평소에 믿음이 가는 친구, 존경하는 친구가 권유를 했기 때문에 오신 분들이 있습니다. 한 가지 기분 좋은 일도 있었습니다. 자매님들의 남편들은 성당에 다니지 않지만 이왕 종교를 가지려면 ‘천주교’를 가지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남편들께서 교리에 가는 것을 허락하였고, 빨리 성당에 가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이런 경우 남편들은 몇 년 내에 성당에 올 확률이 높습니다.

두 번째는 본인의 목적이 있어서 오는 분들입니다. 젊은 남자들이 교리를 받는 경우는 결혼을 하기 위해서인 경우가 많습니다. 장인, 장모님께서 사위가 되려면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조건을 달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는 목적이 달성되면 세례를 받았어도 성당에 오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화장실 가기전과 화장실 다녀와서의 생각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커다란 체험을 한 경우입니다. 사랑하는 딸이 갑작스럽게 아픈 경우도 있고,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기도 하고, 잘 되던 사업이 실패하기도 하고, 본인의 건강에 이상이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들이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기도 하고, 꼭 원하던 일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 본인 스스로 성당에 가겠다고 다짐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큰 체험이 있었던 사람은 세례를 받은 후에도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을 봅니다. 이미 그분들은 체험을 통해서 하느님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성서말씀을 통해서 만났던 ‘이사야 예언자,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가 이런 경우입니다. 주체할 수 없는 큰 체험 앞에 인간이 얼마나 약하고 부족한 존재인지를 느끼게 됩니다.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하느님께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큰 체험을 한 사람들은 대부분 겸손하게 됩니다. 이사야 예언자도 ‘큰일 났구나, 이제 나는 망했다. 나는 입술이 더러운 사람이다.’라고 말을 하였습니다. 베드로 사도도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라고 말을 하였습니다. 바오로 사도도 ‘나는 사도들 가운데 가장 보잘 것 없는 자로서, 사도라고 불릴 자격조차 없습니다.’라고 말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겸손한 분들이 구원의 역사에서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네 번째는 본인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서 성당에 온 분들입니다. 커다란 체험은 없었지만, 늘 생각을 하고 있었던 분들입니다. 이런 분들도 진리에 대한 갈망이 있기 때문에 세 번째 경우의 사람들과 같이 교리반 출석을 아주 잘합니다. 대부모를 정할 때도 스스로 구역장님께 전화를 해서 대부모님을 정해 달라고 할 정도입니다. 이런 분들은 순수한 마음으로 왔기 때문에 신앙이 성숙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거룩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분들은 나약하다는 것을 이해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신앙인들도 근심과 걱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삶의 한가운데에서 유혹과 갈등 앞에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런 분들은 세례를 받은 후에 실망하여 냉담하기도 하지만, 좋은 분들을 만나고, 신심단체에서 활동을 하면 점차 신앙이 성숙하고, 다른 이들을 하느님께로 이끌어 주는 굳센 신앙인이 되곤 합니다.

저는 유아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이런 네 가지 유형의 예비자는 아니었습니다. 유아세례를 받은 신앙인들은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에 다른 것들은 경험할 기회가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때로 온실 속에서 자란 화초와 같아서 신앙을 갖는 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진지하게 고민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피정과 교육을 통해서 자신을 새롭게 하지 않는다면, 말씀을 통해서 하느님을 새롭게 만나지 못한다면 이런 유형의 신앙인들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신앙인’이 될 경우가 있습니다. 세례를 받아서 신앙인인 것은 맞지만 본인도 신앙인이라는 것은 인식하고 있지만 삶은 신앙인처럼 살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최고의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방법으로 부르심을 받았든지, 최선의 삶이 있는 것입니다. 어떤 방법으로 하느님을 찾게 되었든지, 삶의 지뢰밭은 항상 있기 마련입니다. 유혹의 달콤함은 가리지 않고 모든 신앙인을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 이사야 예언자,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가 보여 주었던 것처럼 ‘겸손’함을 가지는 것입니다. 나의 욕심과 교만함을 버릴 줄 알아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어떤 방법으로 하느님을 찾았느냐를 묻지 않으시고, 우리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댓글 3

  • 2010년 2월 7일 오전 8:54

    아멘!

  • 2010년 2월 7일 오후 3:54

    ‘나는 사도들 가운데 가장 보잘 것 없는 자로서, 사도라고 불릴 자격조차 없습니다.’아멘!

  • 2010년 2월 8일 오전 8:37

    아멘!!

매일복음 묵상

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