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매일 저녁 6시쯤에 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중에는 ‘맛집’을 소개하는 프로가 있습니다. ‘삼겹살, 곱창, 감자탕, 해물탕, 냉면, 설렁탕’ 우리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먹거리들을 소개합니다. 하지만 텔레비전에 나오는 맛집들의 특징이 몇 가지 있습니다. 식당의 주인들은 처음에는 실패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꾸준한 노력과 연구를 하였고, 다른 집과는 다른 맛을 개발하여 많은 사람들이 찾는 식당이 됩니다. 그리고 식당의 주인들이 음식을 만드는 과정을 자세하게 소개해 줍니다. 하지만 한 가지 자신들이 개발한 특별한 비법은 알려주지 않습니다. 육수에 넣는 특별한 재료, 자신들의 방법으로 만든 양념과 같은 것들은 알려주지 않습니다. 방송을 보면서 저도 한번쯤은 가서 먹으러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주인의 뼈를 깎는 노력과 희생이 좋은 결실을 맺는다는 이야기를 주로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씨앗은 비록 작지만 그 안에 수많은 결실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 씨앗이 좋은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밭’이 좋아야 한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하느님께서는 ‘다윗’에게 새로운 왕좌를 마련해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가득하고, 백성들은 모두 신명나게 살 수 있는 나라를 세워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인류 역사를 보면 사람들은 함께 더불어 살면서 사회를 구성하였습니다. 우리는 사회를 구성함으로써 다른 생명체들로부터 우리 자신을 보호할 수 있었고, 수많은 문화와 문명을 만들어 왔습니다. 학교 다닐 때, 국사 시간에 배운 사회의 형태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씨족사회, 부족사회, 국가의 형성’입니다. 국가의 형태도 점차 발전하였습니다. ‘왕을 중심으로 하는 국가, 하느님을 중심으로 중세의 봉건주의, 전제주의, 자본주의, 민주주의’의 사회입니다. 우리는 지금 대부분 ‘민주주의’라는 사회체제에서 살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백성이 주인이 되는 사회이고, 다수의 사람들이 행복하기를 추구하는 ‘공리주의’에서 시작됩니다.
다수의 행복을 추구하는 민주주의에서는 자칫, 소수의 사람들의 권리와 행복이 잊혀질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그런 원칙위에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소수의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 있을까요?
첫째는 신체적인 약점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장애인들은 사회의 시설물을 쉽게 이용하기가 어렵습니다. 또한 취업을 통해서 경제적인 활동을 하기도 어렵습니다. 장애인들을 위한 편의 시설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고, 장애인들을 바라보는 시각도 많이 달라졌지만 아직도 장애인들이 삶을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불편한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둘째는 성의 정체성을 상실하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우리 사회에는 ‘동성애자’들이 있습니다. 또한 생물학적으로 주어진 성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성전환’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나라는 동성애자들과 성전환자들에게 법적인 차별을 두고 있습니다. 유전적인 문제로, 심리적인 문제로 성의 정체성을 상실하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를 생각하는 나라들도 조금씩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도 ‘동성애자, 성전환자’들을 심리적, 유전적인 문제로 보기보다는 ‘윤리적’인 기준으로 먼저 보고 판단을 하는 편입니다.
셋째는 자신들의 신념을 지키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20년 이상 된 차량을 계속 타고 다니는 사람이 있습니다. 거의 모든 텔레비전이 컬러텔레비전인데 아직도 흑백텔레비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하기 보다는 자신만이 가진 신념을 굳게 지키려는 사람들입니다. 예전에는 흔히 볼 수 있었던 공중전화는 지금 쉽게 찾을 수 없습니다. 핸드폰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공중전화’가 없다는 것은 큰 불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다수의 행복이 아니라, 모든 이의 행복을 원하셨습니다. 조금 늦고, 불편할지 모르지만 모든 이들이 함께 행복할 수 있기를 바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아흔아홉 마리의 양’이 소중하지만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아서 양 우리에 데려오기를 더 원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수의 사람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를 원하셨습니다. 하지만 다수의 사람들로부터 차별을 받고, 죄인으로 취급을 받는 소수의 사람들까지 모두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병자들을 따뜻한 사랑으로 대하셨고, 그들이 간절하게 바라는 것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가서 사제에게 깨끗해진 몸을 보이고, 가족들에게 돌아가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참된 행복‘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까지도 품어주는 사랑입니다. '가난한 사람, 슬퍼하는 사람, 우는 사람, 배고픈 사람, 병든 사람’들이 위로를 받고 하느님 나라의 행복에 초대 받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더 나아가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 고통과 절망 중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헌신하는 사람들도 행복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들 마음의 밭에 뿌려졌습니다. 말씀이 결실을 맺고 풍성한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우리들 마음의 밭이 비옥해야 합니다. 우리들 마음의 밭에 기도의 비료를 뿌려야 합니다. 사랑의 물을 주어야 합니다. 친절과 온유, 겸손과 나눔의 하우스를 세워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하느님 말씀은 우리들 마음의 밭에서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처럼 수십 배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나와 가족은 물론 이웃과 세상을 환하게 밝혀줄 수 있는 말씀의 열매들이 전해 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내 마음의 밭을 가꾸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