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아네스 기념일

2010. 1. 21. 오전 7:00:38

글자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성녀 아네스 기념일입니다. ‘아네스’는 어린양이라는 뜻입니다. 우리 모두 성녀 아네스처럼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향한 열정으로 신앙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성서 말씀의 주제는 ‘시기와 질투’입니다. 인터넷에서 시기와 질투에 관한 말들을 찾아보았습니다. 생각보다 많더군요.
“시기는 자신의 화살로 자신을 죽인다. 질투 속에는 사랑보다 이기심이 더 많다. 세상 사람들은 나보다 나은 사람들을 싫어하고 나에게 아첨하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모든 격정 중에 가장 추악하고, 반사회적인 것, 그것은 시기이다. 공기처럼 가벼운 사소한 일도, 질투하는 이들에게는 성서의 증거처럼 확정적이다. 나는 내 실망은 견딜 수 있어도 남의 희망은 참을 수 없다. 시기심은 살아있는 자에게서 자라다 죽어서 멈춘다. 시기심을 나타냄은 자기 자신에 대한 모욕이다.”

이중에서 가장 제 마음에 와 닿았던 것은 ‘공기처럼 가벼운 사소한 일도, 질투하는 이들에게는 성서의 증거처럼 확정적이다. 말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요즘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법관의 무죄 선고가 생각났습니다. ‘미네르바라는 이름으로 인터넷에 경제의 흐름을 기고했던 사람이 무죄 선고를 받았습니다. 교사들의 시국선언이 무죄선고를 받았습니다. 강기갑 의원의 국회 내 폭력혐의가 무죄선고를 받았습니다. 재작년 촛불집회의 원인이 되었던 광우병 파동의 PD 수첩 제작진들에게도 무죄가 선고되었습니다.’

검사는 혐의가 있으면 기소를 하고 법정에 세우면 됩니다. 변호사는 혐의가 있는 사람들의 무죄를 주장하거나, 정상 참작이 되도록 변론을 하면 됩니다. 판사는 말 그대로 법과 원칙에 따라서 판결을 내리면 됩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판사의 판결에 대해서 잘못된 판결이라고 말을 하기도 하고, 판사들이 독립된 판결을 할 수 있도록 압력을 가해서는 안 된다고 말을 하기도 합니다.

축구나 야구 경기에서 심판은 때로 오심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일단 판결이 내려지면 거의 대부분은 심판의 판정에 승복을 합니다. 심판도 사람이기 때문에 실수를 할 수 있지만 심판의 양심과 심판의 공정함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사람의 인격을 다루는 판사입니다. 한 사람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위치에 있는 판사입니다. 판사의 판결에 다소 불만이 있을 수 있겠지만 법관의 판결은 또한 법의 이름으로 이야기해야 할 것입니다. 법관의 판결을 다른 이름으로, 다른 방법으로 이야기하면 법관의 독립이 바로서지 못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사울은 다윗의 승리에 대해서 시기와 질투를 하였습니다. 그와 같은 시기와 질투가 결국 사울의 삶을 하느님과 멀어지게 하였습니다. 복음서에서 보면 바리사이파와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의 작은 일에 대해서도 문제를 삼고, 시비를 걸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죽이려고까지 하였습니다. 이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던 예수님께 대한 시기와 질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사제로 살아가면서 많은 경우에 주님을 먼저 생각하기보다는, 주님께서 하신 방법을 따라 하기보다는, 나를 위해서, 나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살았던 적이 많습니다. 어제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움켜진 손을 펴 주셨습니다. 우리는 많은 것들을 움켜쥐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명예, 권력, 자존심, 욕심’이런 것들을 움켜쥐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움켜쥐면 쥘수록 우리는 세상에서 덮쳐오는 풍랑을 이겨내기 힘든 것이라 생각합니다. 시기와 질투의 그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주님께서 걸어가신 길, 주님께서 보여주신 길을 가면 우리들 또한 풍랑을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버리는 삶입니다. 주는 삶입니다.

댓글 2

  • 2010년 1월 21일 오전 10:41

    시기와 질투의 그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아멘!

  • 2010년 1월 21일 오후 12:3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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