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작년 1월 20일 용산참사의 현장에서 세상을 떠난 희생자들을 위한 영결식이 있습니다. 희생자들이 이제는 천상에서 영원한 삶을 사시기를 기도합니다. 유가족들도 힘을 내서 고인들의 몫까지 충실하게 살아가도록 기도합니다. 유가족들은 희생자들에 대한 사과와 책임자의 처벌 그리고 보상을 요구했습니다. 정부는 개인과 개인과의 문제이기 때문에 개입을 할 수 없다고 말을 했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유가족들과 함께 했고, 특히 종교인들이 유가족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었습니다. 2009년의 끝자락에서 정부는 유가족들과 합의를 하였습니다. 유족들은 더 이상 책임자에 대한 처벌을 주장하지 않고, 정부도 유감의 뜻을 표명하며, 재개발 업자들은 유족들에게 보상을 하는 것으로 합의가 이루어졌습니다. 2010년도에는 이와 같은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김수환 추기경님과 함께 민주화를 위해서 헌신하였던 주교님이 있습니다. 그분의 이름은 ‘지학순 주교님’이십니다. 원주교구의 교구장이셨고, 박해시대가 아닌 중에 감옥으로 끌려가신 유일한 주교님이셨습니다. 주교님께서 생전에 사제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제생활 본연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도생활, 성사집전을 성실히 해야 한다. 그리고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다양한 사회 현상들 중에 자신의 현주소를 어느 곳에 두느냐에 따라 그 사제생활의 깊이가 좌우된다. 일시적인 즐거움으로 현장을 찾다 보면 사제생활은 깊이가 없어지며 그릇된 길로 가기 십상이다. 하지만 아픔과 고통을 받는 현장에 관심을 갖고 드나들다보면(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사제직의 참된 정체성을 느끼게 되고, 은총을 체감하게 된다. 정의와 사랑이 파괴된 현장을 외면하지 마라! 사제직은 구체적인 투신의 삶이어야 한다.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는 사제는 이미 정체성을 잃어버린 것이다.”
1년 가까이 용산참사의 현장에서 자리를 지키며 유족들을 위로하고, 매일 희생자들과 유족들을 위하여 미사를 봉헌한 동창신부가 있습니다. 이번에 협상이 타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동창신부에게 전화를 하였습니다. 동창신부는 이렇게 이야기를 하더군요. ‘결국 사랑이 승리를 하였다.’ 누군가를 원망하고, 미워하는 대신 용서하고, 화해하는 기도를 하였습니다. 투쟁과 대립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유족들의 손을 잡아주고, 함께 있는 것을 선택하였습니다. 먼 길을 걸어온 것 같지만 결국 사랑이 승리를 하였다고 생각합니다.
‘너희의 몸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라고 하십니다. 2010년도에 나의 몸은 주로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 길을 예수님을 보면서 찾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몸은 주로 어디에 있었습니까? 태어난 곳도 궁핍한 마구간입니다. 그분의 몸이 가신 곳은 가난한 사람, 아픈 사람, 슬픈 사람, 버림받은 사람들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분의 몸이 가신 곳은 한적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기도하셨고, 영적인 힘을 얻었습니다.
오늘의 성서말씀은 우리의 몸이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 가져야 하는 두 가지의 마음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원망과 분노의 마음을 버리고 용서와 화해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잘못한 사람들이 그 죄의 대가를 치루기전에 그 잘못을 뉘우치고, 하느님께 용서를 청할 수 있도록 기도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주님의 기도에서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우리가 용서하듯이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하느님은 당신의 자녀들을 사랑하십니다. 아흔아홉 마리의 양들도 소중하게 여기시지만 길을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이 길을 찾기를 더 간절히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2010년이 시작되었습니다. 내 마음 속에 미운 사람이 있다면, 용서가 안 되는 사람이 있다면 하느님의 도움으로 그들을 용서할 수 있도록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우리의 몸이 하느님께서 기뻐하는 곳에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겸손한 마음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이렇게 말을 하였습니다. ‘그분은 점점 커지셔야 하고, 나는 점점 작아져야 합니다.’ 지난 목요일에 성시간이 있었습니다. 박신부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예수님’을 설명해 주였습니다. 독일의 종교 화가이자 사제인 ‘지거 쾨더(Sieger Koeder)’의 그림을 설명해 주시면서 이렇게 이야기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그림의 어디에서도 예수님의 얼굴을 볼 수가 없습니다. 오로지 발 씻은 물에 비친 모습에서 그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자신을 낮추고 하는 봉사 속에서 우리는 그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고 겸허한 봉사를 통해서 그분께서 사람이 되어 오신 육화(강생)의 신비를 몸으로 체험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무릎을 꿇는 행위와 손에서 가장 멀리 있는 부분인 발을 씻어주는 행위야말로 상대방의 가장 부족한 부분을 감싸는 행위라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무릎을 꿇는 행위는 굴복의 자세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제자의 발 앞에 무릎을 꿇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모습을 바로 더럽다고 여겨지는 발 씻은 물에서 그분의 모습을 찾아보게 되는 것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줍니다. 바로 우리가 그분의 모습을 진정으로 찾을 수 있는 곳은 발 씻은 물에서였던 것처럼 구차하고 하찮게 여겨지는 봉사의 삶에서 오히려 그분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새해에는 용서와 화해의 마음으로, 겸손과 사랑의 마음으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곳에 우리의 몸과 마음이 가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