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어제 아침에는 가슴이 훈훈해 지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할머니께서 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자랑을 하셨습니다. ‘나는 보약을 자주 먹어요. 아들과 딸이 전화를 하면 힘이 나요. 나에게는 전화 한통화가 보약보다 더 좋아요.’ 할머니께서는 한약을 먹는 것보다, 자녀들의 전화가 더 큰 보약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도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의정부 집엘 잠시 다녀왔습니다. 전화가 보약이라면, 집엘 찾아가서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은 산삼을 드시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제 2009년도 이틀 남았습니다. 부모님께 보약, 산삼을 선물로 드리는 것은 어떨까요? 부모님께서 돌아가셨다면 어떻게 할까요? 그렇습니다. 주변의 이웃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하는 것이 하늘에 계신 부모님께 해드리는 것과 같습니다.
어제, 또 하나의 따듯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전주의 한 동네에는 10년 동안 매년 12월이면 어려운 이웃을 위해서 기부를 하는 ‘얼굴 없는 천사’가 있다고 합니다. 그분은 지난 2000년부터 동네 주민 센터 옆에 기부금을 놓고, 전화를 하셨다고 합니다. 올해는 방송국에서 기자들이 취재를 하고, 얼굴을 확인하려고 했기 때문에 ‘얼굴 없는 천사’가 누구인지 밝혀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얼굴 없는 천사’ 올해는 다른 장소에 기부금을 놓고 가셨다고 합니다. 10년 동안 어려운 이웃을 위해서 기부를 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처음에는 몇 십만 원씩 했는데, 해가 갈수록 기부를 하는 금액이 늘어났다고 합니다. 올해는 그 액수가 팔천만원이 넘었다고 합니다. 누구인지, 생활형편이 어떤지는 모르지만, 기부하는 액수가 늘어난 것을 보면 하는 일이 더욱 잘 되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부자의 헌금도 좋게 보셨지만, 가난한 과부의 헌금도 높이 평가하셨습니다. 이웃을 위해서 가진 것을 나누는 것은 많이 가진 사람만이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께 받는 것이 많다는 생각을 가지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사는 사람들은 누구나 기부를 잘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것에 관심을 두는 사람, 세상의 것에서 기쁨을 찾으려고 하는 사람은 기부를 하거나, 봉사를 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는 친구를 배반하기도 하고, 가족들의 가슴에 못을 박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 제1독서는 이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세상도, 또 세상 안에 있는 것들도 사랑하지 마십시오. 누가 세상을 사랑하면, 그 사람 안에는 아버지 사랑이 없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의 욕망과 눈의 욕망과 살림살이에 대한 자만은 아버지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온 것입니다. 세상은 지나가고, 세상의 욕망도 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
올해도 이제 이틀 남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자비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에 363일을 욕심과 욕망 때문에 채우려고만 했어도, 오늘과 내일 마음을 비우고 나누는 삶을 산다면, 베푸는 삶을 산다면, 기도의 삶을 산다면 그것만으로 모든 것을 용서하시고 새로운 한해를 선물로 주시는 분이라 믿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한나는 예수님을 만나고 축복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세상의 분주함 속에서는, 세상의 것들을 사랑하는 사람은 만날 수 없는 예수님이었습니다. 헤로데가 살았던 궁전에서는 예수님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율법과 규율에 얽매서 살던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기도 중에 하느님의 뜻을 찾았던 한나는 예수님을 보았고, 축복의 기도를 할 수 있었습니다. ‘세상은 지나가고, 욕망도 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