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4주간 수요일

2009. 12. 23. 오전 8:37:41

글자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한 아이가 태어나면 가정에 많은 변화가 생깁니다. 아이는 아직 말도 하지 못하지만 가족들은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됩니다. 남편과 아내는 이제 아빠와 엄마라는 이름을 갖게 됩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되고, 삼촌, 이모, 고모라는 이름을 갖게 됩니다. 아이가 태어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변화가 생기는 것입니다. 아이의 탄생은 그래서 축복입니다. 오늘 우리는 세례자 요한이 탄생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길을 준비한 예언자입니다.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이고, 신약의 새로운 예언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에게 칭찬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람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 중에 가장 뛰어나다고 하였습니다. 언젠가 오기로 한 엘리야가 요한이라고 말을 하셨습니다. 요한은 회개의 세례를 주었고, 광야에서 하느님의 나라를 준비하면서 살았습니다. 요한이라는 말은 ‘하느님께서 불쌍히 여기시다.’라는 뜻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불쌍히 여기시며, 우리들 모두가 하느님의 품안에서 기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지만, 현실의 삶에서 우리는 참된 기쁨과 평화를 느끼지 못합니다. 지난 대림 특강 때 정월기 신부님께서 현대인들이 하느님과 멀어지는 3가지 원인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원인을 알면, 방법을 찾을 수 있기에, 원인을 정확하게 알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는 공허함이라고 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이루어도 공허함을 느낄 수 있고, 모든 것을 다 잃어도 공허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최고의 자리에 오른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오를 곳이 없기 때문에 공허함을 느끼곤 합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워낙 높은 벽 때문에 좌절하는 사람도 공허함을 느끼게 됩니다. 사람의 것들로는, 세상의 것들로는 우리들의 공허함을 채우기가 어렵습니다. 무엇으로 그 공허함을 채울 수 있을까요? 그것은 하느님께 대한 믿음입니다. 그래서 신부님은 ‘순간을 영원처럼 생각하며 충실하게 살 것’을 말씀하였습니다.

둘째는 죄책감이라고 했습니다. 예전에 많은 분들이 원치 않는 임신을 했었고, 본의 아니게 자녀를 유산시킨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우리나라는 ‘낙태’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아이를 유산시킨 어머니들은 죄책감 때문에 평생 가슴앓이를 하곤 합니다. 제가 아는 분도 술을 드시지 않으면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곤 했습니다.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렸다는 미안함이 있었고, 가족들에게 많은 걱정을 주었다는 죄책감이 있었습니다. 부모님은, 가족들은 다 품어주고, 이해하는데 본인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평생 술로 삶을 마감했습니다. 이와 같은 죄책감은 하느님의 사랑이 크다는 것을, 하느님의 자비가 넘친다는 것을 믿을 때, 치유됩니다. 이사야서 1장 18절은 우리에게 위로를 줍니다. 하느님께서는 ‘너희 죄가 진흥같이 붉어도, 너희 죄가 다홍같이 붉어도 눈처럼, 양털처럼 하얗게 해 주신다고 하십니다.’

셋째는 두려움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는 걱정과 두려움의 90%는 실제로 발생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지나간 과거 때문에 원망과 분노를 하지 말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고, 현재의 삶을 기쁘게 살아야 합니다.’ 제가 아는 한시 중에 ‘未得先愁失 當歡己作飛’라는 말이 있습니다. ‘근심이 오지도 않았는데 기쁨이 벌써 날아가 버린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모두는 나에게 와서 쉬어라. 나의 멍에는 편하고 가볍다.

이제 곧 성탄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오시는 아기 예수님의 크신 사랑을 믿으며 ‘공허함, 죄책감, 두려움’을 벗어버리고 희망과 평화를 담고 살아야 겠습니다.

 

댓글 1

  • 2009년 12월 23일 오후 9:25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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