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 화요일에, ‘수학능력 시험 성적 발표’가 있었습니다. 어떤 학생들은 생각보다 성적이 잘 나와서 기뻐하였고, 어떤 학생들은 원하는 성적보다 적게 나와서 한숨을 쉬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교육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고 합니다. 아이의 교육을 위해서 기꺼이 ‘기러기 아빠’의 대열에 합류하기도 합니다. 조기교육의 열풍에 따라서 5살만 되면 한글을 배우고, 그것도 모자라서 영어까지 배우게 합니다. 학교의 수업을 마치면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학원을 향해서 발걸음을 옮기고 있습니다.
우리의 교육은 그 과정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정확한 답을 알고 있으면 되고,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얻으면 다른 것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습니다. 아이가 어떤 꿈을 가지고 있는지, 아이는 요즘 무엇 때문에 고민을 하는지, 공부가 즐거운지 물어보지는 않습니다. 공부를 잘해야 하고, 좋은 대학을 들어가야 하고, 그래서 좋은 직장에 들어가면 됩니다.
우리나라의 부모님들만큼 자녀들의 교육에 대한 열정이 많은 나라의 부모님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유태인들입니다. 그러나 유태인들의 부모님은 자녀의 교육 때문에 ‘기러기 아빠’가 되는 것은 상상도 하지 않습니다. 아이가 밤을 새워 공부를 해서 1등을 하는 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유태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가족’입니다. 가족은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이고, 매주 금요일 저녁은 어김없이 가족들이 함께 모여 식사를 합니다.
유태인들은 항상 질문을 하게 합니다. 왜 공부를 하는지 질문을 합니다. 앞으로의 꿈은 무엇인지 질문을 합니다. 그들에게 정답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1등도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어떻게 해서 정답을 알게 되는지가 중요합니다. 부모님은 끊임없이 자녀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질문을 하게 합니다. 질문을 통해서 해답을 찾을 수 있도록 이끌어 줍니다.
우리의 공부의 목적은 성공입니다.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남들에게 인정을 받으며, 행복한 가정을 이룩하면 됩니다. 이런 과정은 끊임없이 경쟁해야 하고, 경쟁은 누군가를 이겨야 합니다. 이런 성공을 이룩해야 하는 사회는 2등은 별로 기억하지 않습니다. 유태인들의 공부의 목적은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경쟁보다는 서로 협력하는 것이 더욱 필요한 사회입니다. 유태인들은 그러기에 나눔과 기부를 어려서부터 생활화 하도록 교육을 합니다. 유태인들은 장사를 하더라도, 하루의 마감시간이 되면 팔던 물건들을 가게 밖으로 내어 놓습니다. 가난한 이들이 그것을 가져 갈 수 있도록 배려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유태인들은 전 세계 인구의 0.2%에 불과하지만 노벨상 수상자는 129명입니다. 이는 전체 노벨상 수상자의 25%에 이른다고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나라에서는 가장 작은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하늘나라는 상대평가가 아닙니다. 그래서 성적을 정하고, 순위를 정해서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나라는 절대평가입니다. 얼마나 하느님을 향한 열정이 있느냐를 생각합니다. 얼마나 양심을 따라서 살았느냐를 생각합니다. 얼마나 이웃을 위해서 헌신하였느냐를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하느님나라는 정원 제한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누구나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나 들어가는 곳은 아닙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세례자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나라는 폭행을 당하고 있다. 폭력을 쓰는 자들이 하늘나라를 빼앗으려고 한다.’우리가 하느님나라를 순위를 정해서 시험을 치르듯이 들어 갈 수 있는 곳으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하느님나라는 경쟁과 업적으로 들어가는 곳이 아닙니다. 하느님나라는 협력과 나눔을 실천한다면, 사랑과 봉사를 할 수 있다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곳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