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제 2주일

2009. 12. 6. 오전 6:5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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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대림 제2주일입니다. 교회는 오늘 대림 제2주일을 ‘인권 주일’로 정했습니다. 왜 인권이 중요한가요? 생각을 합니다. 사람의 권리가 세상의 다른 식물, 동물과 다르기 때문에 중요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의 권리는 어째서 다른 사물과 다를까요? 그 해답을 우리는 성서의 말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선한 뜻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늘, 땅, 바다, 구름, 물, 식물, 동물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를 닮은 사람을 만들자! 그리고 사람을 만드신 후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숨을 불어 넣어 주셨습니다. 사람의 권리가 소중하고 중요한 것은 사람은 하느님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직접 ’숨‘을 불어 넣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하느님을 닮았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느님의 품성과 하느님의 모습을 닮았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품성은 무엇입니까? 하느님의 품성은 바로 사랑입니다. 그런데 사랑은 그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 짝사랑도 대상이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상대방을 향해 전달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대상은 누구일까요? 그것은 바로 삼위이신 하느님입니다. 성부이신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권한과 권리를 아드님이신 성자에게 위임을 하셨습니다. 성자이신 하느님은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모든 권한을 자신의 뜻대로 행사하지 않았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행사하였습니다. 이제 성자이신 하느님은 성령이신 하느님께 자신이 세우신 교회를 맡겨주십니다. 성령은 성부와 성자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따뜻한 숨결로 교회를 보듬어 주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품성은 사랑이고, 하느님의 모습은 끝없이 자신의 것을 내어주는 희생과 나눔의 모습입니다. 사람이 하느님을 닮았다는 것은 바로 하느님처럼 이웃을 사랑하고, 자신의 것을 이웃에게 내어주는 것입니다. 그런 하느님을 닮은 모습대로 살아가는 사람의 인권은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첫 번째 아담인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모습대로 살아갔습니다. 그러나 악의 기운에 넘어가 하느님을 닮은 모습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누가 너에게 선과 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먹게 하였느냐?’라고 질문했을 때, 아담은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짝을 지워주신 ‘이 여인’이 먹게 하였습니다. 아담은 자신의 잘못을 아내에게 넘겼습니다. 아내의 탓으로 돌렸습니다. 만일 아담이 ‘저의 잘못입니다. 아내인 하와는 몰라서 먹었습니다.’라고 말을 했다면, 하느님께서는 선하시고, 자비하시기 때문에 아담의 잘못을 용서했을 것입니다. 하와도 비록 자신이 권했다고는 하지만 하느님 앞에서 자신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남편이 원망스럽고 미웠을 것입니다. 이제 하나가 되는 부부의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소중한 인간의 품격이 손상되었을 때, 그 손상된 인간의 품격을 회복시켜 주시는 분은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첫 번째 아담이 손상시킨 인간의 품격을 두 번째 아담이신 예수님께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회복시켜 주셨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해 주세요. 저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십자가 위에 세우고, 조롱을 하고, 침을 뱉는 것은 그들이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 몰라서 그런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몰라서 한 저 사람들을 용서해 주시도록 청하였습니다. 예수님의 희생과 사랑은 단절된 하느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다시 하느님을 닮은 소중한 인격체가 될 수 있었습니다.

세상의 동물들은 3차원의 욕망에 의해서 살아갑니다. 그것은 먹고, 자고, 자손을 낳아 번성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충족되면 동물들은 만족합니다. 하느님을 닮은 사람들은 동물들과는 달리 5차원의 욕망에 의해서 살아갑니다. 그것은 먹고, 자고, 자식을 낳아 기르는 것과 함께 재물을 모으고, 남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다섯 가지 욕망을 통해서 문화와 문명을 만들어 갔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은 이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두 가지 차원의 삶을 더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신앙인들은 바로 7차원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성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지만 아픈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모두 어떤 상황에 있다 할지라도 하느님의 소중한 자녀입니다. 우리 모두는 존귀한 존재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우리는 잠시 스쳐 지나가는 짧은 생으로 마감을 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영원한 생명의 원천이신 예수님을 믿어서 우리들 또한 영원한 생명을 얻으리라는 희망을 가지면서 살아야 합니다. 이런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은 우리가 하느님의 모습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성프란치스코는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우리들이 살아가야 할 방향을 아름다운 기도로 남겨 주었습니다.
‘위로받기 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 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 보다는 사랑하게 하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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