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날씨가 추워졌습니다. 건강관리에 각별히 유념해야 하겠습니다. 어제는 후암동 성당에 있는 동창신부님과 남대문 근처에서 저녁식사를 하였습니다. 식사를 다 할 무렵 식당 주인께서 동창신부님을 유심히 보면서 우리 성당 신부님을 닮았다고 하셨습니다. 동창 신부님은 후암동으로 가신지 2달 되었습니다. 식당 주인께서도 본당 신부님께서 자신의 식당에 오셨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처음에는 몰랐다고 합니다. 돌아오는 길에 동창신부님과 이야기 했습니다. ‘언제나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 아는 사람이 없을 것 같아도 우리는 아는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세상은 넓은 것 같지만 때로 세상은 참 좁다는 생각입니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올바른 마음가짐을 가지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엘아자르’는 잠시 양심을 속이고 편안하게 사는 길을 택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자신이 가졌던 명예와 존경을 지키기 위해 고통의 길, 죽음의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많은 이스라엘의 젊은이들이 엘아자르를 존경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본인은 율법을 어기지 않았지만, 그의 태도는 율법을 지키려는 이스라엘의 젊은이에게 실망을 주는 일이 되기 때문에 잠시의 편안함을 포기하고, 영원한 삶을 향해 나갔습니다.
‘친일 인명사전’이 출간되었습니다. 후손들의 입장에서는 별로 반가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본의 아니게 일본에 협력했다고도 말을 합니다. 비록 친일은 했지만 나중에 조국의 근대화를 위해서 많은 공헌을 했으니 과거의 허물은 문제될 것이 없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친일의 방법과 행위를 기록으로 남기려는 사람들에게도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친일을 했던 분들을 처벌하고 단죄하는 것이 목적은 아닐 것입니다. 일기를 쓸 때 좋은 일도, 나쁜 일도 기록하듯이 우리 역사를 있는 그대로 한번 정리를 하자는 생각이 있었을 것입니다.
일본의 새로운 총리인 ‘하토야마’는 “여러 아시아 국가의 사람들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준 지 60년 이상이 지난 지금도 진정한 화해가 달성됐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일본의 총리 입장에서는 지난 과거의 잘못을 다시 언급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진정한 화해와 협력을 위해서는 지난날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용서를 청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일본 총리의 이와 같은 생각은 아시아의 연합과 발전을 위한 올바른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아들은 잃은 사람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았던 자캐오가 구원을 받았던 것은 무엇입니까? 자신의 허물과 잘못을 인정하고, 자신이 피해를 준 사람이 있다면 네 곱절로 갚아 주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은 혈통으로 구별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은 하느님 앞에 솔직한 사람들입니다. 양심이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은 과거 때문에 단죄 받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허물이 있다 할지라도 현재의 반성과 뉘우침으로 미래의 구원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