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31주간 토요일

2009. 11. 7. 오전 6:43:53

글자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어제는 구역장/반장님들과 함께 ‘천호성지’엘 다녀왔습니다. 성지에서 사목하시는 신부님께서 한분은 저와 같은 고향이시고, 다른 한분은 저의 친척이었습니다. 성지순례도 하고, 모처럼 고향 신부님과 친척 신부님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교우촌’을 형성하였고, 순교하신 분들의 유해를 모셨던 천호성지는 이제 순교성인들의 유해가 모셔진 성지가 되었고, 피정의 집이 있어서 많은 신앙인들이 찾는 순례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어제 내려가는 길에 ‘정안 휴게소’에서 잠시 쉬었습니다. 요즘 고속도의의 휴게실은 깨끗하고, 먹을거리도 다양합니다. 어제 화장실 벽에 있는 글을 읽으면서 잠시 생각을 했습니다. 명심보감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선한 일은 아주 작은 일이라 할지라도 하고, 악한 일은 아주 작은 일일지라도 하지 마라!’ 잠시 마음을 정리할 수 있도록 해준 짧지만 좋은 글이었습니다.

예전에 익산에 있는 친척집을 방문할 때였습니다. 버스를 타고 가는데 한 여학생이 탔습니다. 자리를 양보하고 친절하게 대했습니다. 그런데 그 여학생도 제가 내리는 곳에서 함께 내렸습니다. 저는 여학생이 내가 친절하게 해 주어서 저를 따라 내렸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 여학생은 제가 가는 길을 계속 따라 오는 것이었습니다. 역시 친절한 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가 보다 생각을 하며 길을 갔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여학생은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친척어르신의 따님이었습니다. 친척집에 도착해서 우리는 함께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지금도 그 친구를 만나면 예전에 버스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곤 합니다. 작은 선행이 풍성한 결실을 맺는 것을 우리는 자주 볼 수 있습니다.

한번은 전화 때문에 아주 곤란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학원에서 공부를 할 때였습니다. 학원에는 사람이 없었고, 저 혼자 있었습니다. 전화가 한통 걸려왔습니다. 저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상대방은 ‘나는 김 선생님인데 박 선생님이 있느냐!’고 하였습니다. 저는 상대방이 저를 모른다고 생각하여서 장난을 하였습니다. ‘여긴 중국집이고, 그런 사람 없습니다.’ 조금 있다가, 김 선생님이 올라오셨습니다. 그 선생님은 바로 아래층에서 전화를 하셨던 것입니다. 저는 그때 학생이 장난을 치면 안 된다며 꾸중을 들었습니다. 사소한 일이라 할지라도 나쁜 일은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새삼 알았습니다.

처음부터 도박 때문에 큰돈을 잃는 사람은 없습니다. 작은 돈일지라도 습관이 되면 나중에 큰돈을 탕진하게 됩니다. 속담에 ‘바늘 도둑이 소도둑이 된다.’고 합니다. 이것역시 작은 것들이 나중에 한 사람의 인격을 그릇된 길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당에 나오지 않는 분들 중에서 커다란 이유 때문에 성당에 나오지 않는 분도 있지만 많은 분들은 작은 이유 때문에 성당에 나오지 않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서 아는 사람들이 없어서 성당에 나가지 않는 경우도 있고, 어쩌다 한번 주일 미사를 빠졌는데, 그 뒤로 성당에 나가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중고등학생의 경우 학교 공부 때문에 성당에 빠지는 경우가 생기고, 나중에 대학에 가서도 성당에 나오지 않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한 사람은 큰일에도 성실하고, 아주 작은 일에 불의한 사람은 큰일에도 불의하다.’ 어제 고속도로 휴게실의 화장실에서 읽은 글과 비슷한 내용이었습니다. 화장실에서 짧은 시간이었지만 글을 유심히 읽은 것이 오늘 강론을 준비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들에 대해서는 아주 민감하게 반응을 합니다. 재물을 좀 더 얻기 위해서 열심히 일을 합니다. 의사가 처방전을 주면 약국에 가서 약을 사는 것도 빨리 합니다. 건강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몸의 건강을 위해서라면 의사의 지시대로 금식을 하기도 하고, 병원에서 진찰을 받을 때 시간 약속을 반드시 지키며, 의사의 말이라면 옷도 쉽게 벗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영혼이 아플 때,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삶의 의미를 상실하고, 보람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하는 일이 재미없고, 성당에 나가지 않는 날도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즉시 영혼의 건강을 되찾기 위해서 피정을 하거나, 사제에게 면담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서를 묵상하고,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찾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는 우리가 영적인 일에 민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일에도 충실해야 하지만, 영적인 건강도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영적으로 민감한 사람은 과거의 일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은 자비하시니, 과거 나의 잘못을 너그럽게 용서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또한 나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민감한 사람은 오늘 나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니 오늘 일용할 양식을 청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 구하라 찾을 것이다.’ 영적으로 민감한 사람은 내일 나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습니다. 삶의 여정에서 찾아오는 많은 유혹을 이겨낼 수 있도록 용기를 청하는 것입니다.

작은 일일지라도 주님을 위한 일에는 최선을 다하는 하루가 되시기 바랍니다

댓글 1

  • 2009년 11월 7일 오전 11:01

    아~멘!!

매일복음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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