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9주간 금요일

2009. 10. 23. 오전 8:52:54

글자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예전에 우리 조상들은 ‘홍익인간’, ‘세속오계’, ‘삼강오륜’과 같은 가치를 배웠습니다. 이는 우리 조상들이 사회를 유지하고 이끌어가는 윤리와 도덕의 지침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렵고 힘든 문제가 생기면 이와 같은 가르침을 생각하면서 삶의 척도로 삼았습니다.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는 삶, 아내와 남편, 부모와 자식, 임금과 신하, 친구와 친구,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왔습니다. 지금은 많이 퇴색되었지만, 이런 가르침은 우리민족을 하나로 통합하고, 정이 넘치면서도 질서가 있는 사회가 되도록 이끌었습니다.

요즘의 학생들은 이런 가치와 신념을 배우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학교는 삶의 지혜를 깨우치고,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풀고, 암기하는 곳으로 변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많은 사람들이 대학을 졸업했어도, 예전에 많이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쉽게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들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세례를 받고 신앙인이 되었다는 것은 이제 삶의 새로운 가치와 원리를 배운다는 뜻입니다. 그것을 명확하게 정리 해 놓은 것이 예전에 배웠던 ‘교리문답’입니다. 그 첫 번째는 이렇습니다. ‘사람은 하느님을 믿고 알아서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 태어났다.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람을 위해서 만들어 주셨다. 이제 하느님을 찬미하는데 유익하면 그것들을 사용할 것이고, 하느님을 찬미하는데 유익하지 않으면 버릴 것이다. 하느님을 위해서라면 부귀보다 가난을 택할 수도 있고, 건강보다 질병을 택할 수도 있고, 장수보다 단명을 택할 수도 있다. 이제 삶의 목적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간결하면서도 우리들이 살아가야 할 방향을 정확하게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의 주제는 ‘식별’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삶의 모든 문제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세상은 돈을 목적으로 하고, 이윤을 추구하면서 살아갑니다. 돈과 이윤을 추구하기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기도 합니다. 타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은 잊혀지기도 합니다. 가난하고 굶주린 사람, 질병 때문에 죽어가는 사람, 외롭고 절망 중에 있는 사람을 생각할 시간이 없습니다. 신앙인이라면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내 안에서 내가 결정하지만 많은 경우에 나는 악의 유혹에 빠져서 결정을 하게 됩니다.’ 나는 과거의 그릇된 습관과 잘못된 가치기준으로 세상을 바로보기 때문입니다. 이제 내가 판단하는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여야 합니다. 예수님이라면 지금 이런 문제 앞에서 어떻게 결정을 했을까를 생각하면서 판단을 하여야 합니다. 우리 식별의 기준은 ‘예수님’이어야 한다고 합니다. 나침반의 바늘은 늘 같은 방향을 향해서 움직입니다. 어둔 밤을 항해하는 배들이 기준을 삼은 북극성은 늘 움직이지 않고,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들을 같은 방향으로 인도해 주시는 분은 예수님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오늘 예수님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내일의 날씨는 예보하면서, 내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알지 못하느냐!’ 믿음, 소망, 사랑이 우리를 참된 식별에로 인도해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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