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어제는 2개의 선물을 받았습니다. 한분은 여행을 다녀오셔서 ‘과자’를 선물해 주셨습니다. 다른 한분은 정성껏 담근 ‘매실’그리고 맛있는 ‘감’과‘사탕’을 선물해 주셨습니다. 사제를 사랑하는 마음이 듬뿍 담긴 선물이었습니다. 비록 신학적으로 깊이 아시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신학의 근본, 영성의 근본을 잘 알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아무런 조건 없이, 이유도 없이, 따지지도 않고 주는 것이 사랑의 본질입니다. 하느님께서 그렇게 하셨고,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고, 오늘 제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가 말하는 것처럼 믿음의 길로 들어서는 사람들이 그렇게 하였습니다.
주는 것이 사랑의 본질인데, 그렇지 못한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소유하려하고, 더 가지려하고, 그러면서 남을 속이고, 마음의 평화를 깨버리는 모습을 발견합니다. 마치 거대한 벽 앞에 서있는 작은 아이처럼 ‘사랑의 본질’을 실천하는 것이 힘겹고 어려워 보이기도 합니다. ‘시대정신’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이 작품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화폐 체제 기반 사회’라고 진단합니다. 모든 것의 중심에 돈이 있고, 이 돈을 벌기위해서 노동을 하고, 이 돈을 소유하기 위해서 범죄를 저지르기도 합니다. 화폐 체제 기반 사회의 핵심은 우리가 원하는 것들은 한정되어있고, 그것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돈’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다시 말해서 희소성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모두가 소유할 수 없고, 그래서 돈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화폐체제의 가장 큰 가치는 이윤입니다. 인간의 가치와 삶의 의미는 나중의 문제입니다. 환경과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은 나중에 생각하게 됩니다.
‘시대정신’이라는 작품에서는 또 다른 세상을 이야기 합니다. 그것은 ‘자원 체제 기반 사회’입니다. 물과 공기는 돈을 주고 사지는 않습니다. 물론 요즘은 물을 돈을 주고 사기도 하지만, 아직까지도 물은 그냥 쓸 수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우리사회를 지탱하는 커다란 힘은 ‘에너지’입니다. 이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 거의 전쟁에 가까운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현대사회에서 에너지의 중심은 ‘석유’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석유에 의존하지 않고도 충분히 우리사회를 지탱할 수 있는 에너지를 주셨다고 이야기 합니다. 태양에너지는 오후의 햇빛 1시간만으로도 지구 전체가 1년 동안 쓸 수 있는 에너지를 제공 한다고 합니다. 바람 또한 이것을 잘 이용하면 많은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다고 합니다. 미국은 3개주의 바람을 이용하기만 해도 미국 전체의 에너지를 충당할 수 있다고 합니다. 다음은 바다의 파도입니다. 파도의 힘을 이용해서 영국은 1년에 사용하는 에너지의 70%를 충당할 수 있다고 합니다. 또 다른 에너지원은 땅 속에서 나오는 지열입니다. 1년 동안 땅 속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활용하면 인류가 4000년을 쓸 수 있는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에너지들은 오염도 없고,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인류는 에너지 때문에 굳이 돈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고 합니다. 그렇게 대체 에너지를 개발하면 더 이상 ‘돈’이 필요 없는 세상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기술과 정보의 시대를 살고 있는 인류는 이미 그런 대체 에너지를 개발 할 수 있는 능력과 기술이 충분히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화폐 체제 기반 사회’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인식의 전환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지금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충분히 무상으로 나누어 줄 수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에너지의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석유로 상징되는 화석에너지를 통해서 막대한 부를 차지하는 사람들은 ‘자원기반 사회’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지금의 사회 체제에서는 더욱 많은 사람들이 굶주리고, 질병에 노출되고, 전쟁과 폭력으로 희생될 수밖에 없습니다. 무기를 개발하는 비용과 감옥과 경찰을 확보하는데 드는 비용을 교육과 대체에너지를 개발하는데 사용한다면 더 이상 가난과 굶주림 때문에 인간이하의 삶을 살지 않아도 된다고 합니다. 모든 자원을 충분히 나누고도 남는 사회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런 삶이 바로 영성의 삶입니다. 예언자들은 이런 사회를 꿈꾸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와 같은 세상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랑의 본질이 실현되는 사회, 모든 이가 충분히 나누고도 넉넉한 사회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자원과 재화가 한쪽으로 편중되어서 빈곤이 되풀이되고, 폭력과 전쟁이 계속되는 세상은 변화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