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교우 여러분들의 기도와 사랑으로 8일간 피정을 잘 다녀왔습니다. 특히 이번 피정은 ‘마르코 복음’을 중심으로 한 피정이었습니다. 성서 못자리를 통해서 신앙인들에게 말씀의 기쁨을 전해 주셨던 안 병철 신부님께서 마르코 복음에 대해서 강의를 해 주셨습니다. 피정을 마친 어제는 저를 신학교에 보내주신 신부님을 위한 장례미사가 있었습니다. 피정 중에 신부님의 선종 소식을 들었고, 입관예식, 장례미사, 하관예식에 함께 하였습니다. 하관예식을 하는 시간에는 갑자기 비가 내렸습니다. 그러면서 문득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친한 사람도,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도 결국은 하관예식 때까지만 함께 하는 구나! 우리 삶의 모든 것을 함께 하시는 분은 하느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조금 빠르고, 늦은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 모두는 결국 어제 장례미사를 하신 신부님처럼 이 세상을 떠날 것이란 생각을 하였습니다.
오늘은 이번 피정 중에 들었던 마르코 복음의 핵심적인 내용들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이것이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신 교우분들에게 조금이라도 감사의 마음을 전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1. 마르코는 누구인가?
마르코는 성서에 보면 요한, 요한 마르코, 마르코라고 부릅니다. 이는 당시 사회에서 사람은 2가지의 이름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세례명을 가지고 있고, 세상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과 비슷합니다. 마르코는 베드로 사도와 함께 다녔습니다. 성서는 마르코가 베드로 사도의 통역관이었다고 전해 줍니다. 사도행전에서 볼 수 있는 베드로 사도의 설교는 마르코의 손을 거쳐서 다듬어 졌다고 여겨집니다. 이는 추기경님께서 매년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성탄, 부활 메시지를 교구청의 신부님들께서 미리 초안을 추기경님께 전해드리는 것과 같습니다. 추기경님께서 초안을 참고로 말씀을 주시면 사목국의 신부님들은 그것을 다시 한 번 정리합니다. 마르코는 베드로 사도의 설교와 강연을 정리하는 작업을 했다고 생각됩니다. 이를 통해서 마르코는 베드로사도와 가까이 할 수 있었고, 베드로 사도를 통해서 예수님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었습니다. 마르코 복음은 이렇게 예수님의 생애를, 그분이 누구인지를 가장 가까이에서 보았던 베드로 사도의 이야기를 들었던 마르코에 의해서 기록이 되었습니다.
또한 마르코는 바오로 사도의 선교여행을 동행하였습니다. 성서는 마르코가 바르나바 사도와 친척이라고 말을 합니다. 마르코는 바오로 사도와 동행하면서 바오로 사도의 신념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방인 선교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또한 바오로 사도의 깊이 있는 신학과 그의 조직적인 교회 설립을 보고 배웠습니다. 마르코 복음은 베드로 사도로부터 전해들은 예수님의 생생한 이야기를 바오로 사도로부터 배운 조직적이고 신학적인 토대위에 복음서를 기록 할 수 있었습니다.
새는 두 개의 날개를 가지고 하늘을 날아가듯이, 우리는 생생한 체험과 깊은 성찰을 통한 조직이라는 날개를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체험이 없는 조직은 활력이 없습니다. 반대로 조직이 없는 체험은 식별을 하기 힘들어 집니다. 우리가 교회를 통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나의 생생한 체험을 교회라는 큰 틀에서 식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교회의 큰 틀 안에 있다고 하여도, 결국 신앙은 나와 하느님과의 생생한 만남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그 만남의 출발은 바로 성서를 읽고 묵상하면서입니다. 내일은 마르코가 전하고자 했던 복음은 무엇인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