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10월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10월하면 떠오르는 노래가 있습니다. 이 노래를 부른 가수도 10월 한 달은 무척 바빠진다고 합니다. 가수는 '이용‘이고 노래는 ‘잊혀진 계절’입니다. 서정적인 멜로디와 떠나간 사람을 그리워하는 가사가 아름다웠습니다. ‘잊을 수 없는 꿈이 슬퍼요. 나를 울려요. 그날의 쓸쓸했던 기억도 그대의 진실인가요. 한마디 변명도 못하고 잊혀져야 하는 건가요.’ 떨어져 땅에 뒹구는 낙엽처럼 잊혀진다는 것은 슬프고, 가슴 아픈 일입니다.
풍요로운 결실의 계절인 가을이지만, 이 가을이 쓸쓸하고 외로운 분들도 있습니다. 뜻하지 않은 사고로 병원에 입원해 있는 분들, 인생의 노년을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요양원에서 보내는 분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했던 분들, 가난 때문에 서럽고 외로운 분들도 있습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잊혀진다는 것입니다.
오늘 성서 말씀의 주제는 하느님의 크신 자비와 사랑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고아와 과부, 불쌍하고 병든 사람들을 받아들이시고, 위로해 주신다고 이야기 합니다. 오늘의 제1독서는 바로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 가운데에는 눈먼 이와 다리저는이, 아이를 밴 여인과 아이를 낳는 여인도 함께 있으리라. 그들이 큰 무리를 지어 이곳으로 돌아오리라. 그들은 울면서 오리니, 내가 그들을 위로하며 이끌어 주리라. 물이 있는 시냇가를 걷게 하고, 넘어지지 않도록 곧은길을 걷게 하리라. 나는 이스라엘의 아버지가 되었고, 에프라임은 나의 맏아들이기 때문이다.” 오직 하느님만이 우리를 위로해 주시고, 우리에게 희망을 주시고, 우리를 잊지 않고 사랑하신다고 고백합니다.
복음은 바르티메오가 소경이면서 거지였다고 전해줍니다. 소경인데다가 거지였으니 바르티메오는 삶이 힘들었을 것입니다. 희망도 없고, 친구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소경이 된 것은 ‘죄의 결과’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바르티메오를 무시하고, 죄인처럼 취급했습니다. 현실의 삶에서는 희망을 찾을 수 없었던 바르티메오는 예수님의 이야기를 들었고, 그분께서는 중풍병자, 나병환자, 앉은뱅이까지도 고쳐주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소경 바르티메오가 사는 마을을 지나가고 계셨고, 바르티메오는 예수님을 간절하게 불렀고, 예수님께서는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셨습니다. 바르티메오는 예수님께 외쳤습니다. ‘주님 제 눈을 뜨게 해 주십시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가라, 너의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소경은 단순히 눈을 뜬 것이 아니고, 믿음으로 구원받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소경은 눈을 떴지만 거지였고, 앞으로의 생활도 그렇게 편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 소경에게 주님은 약속하셨습니다. ‘당신의 믿음으로 당신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단순히 육체의 병을 치유 받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좀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편안하게 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엄청난 변화입니다. 마치 애벌레가 하늘을 나는 나비가 되는 것처럼, 물속에서만 지낼 수 있는 올챙이가 개구리가 되어 물 밖에서도 살 수 있는 것처럼 커다란 변화입니다. 그것은 이제 전혀 새로운 삶의 시작입니다. 전에는 볼 수 없었던 것을 보는 기쁨입니다. 하늘을 보고, 나무를 보고, 구름을 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절망에서 희망을 보고, 어둠에서 빛을 보고, 의혹에서 진리를 보는 것입니다.
오늘의 복음에서 볼 수 없었던 것을 보았던 바르티메오의 행동을 생각합니다. 그는 이제 할 일이 무척 많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을 뒤로하고 즉시 예수님을 따랐다고 합니다. 오늘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신앙인들의 책임을 이야기 합니다. 특히 사제들은 더욱 더 예수님을 따르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해야 한다고 말을 합니다. ‘물에 빠진 사람 구해 주었더니 보따리 달라고 한다. 개구리가 올챙잇적 생각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배은망덕’한 사람들을 일컬어서 하는 말입니다.
오늘 96명의 교우들이 ‘견진성사’를 받습니다. 성령의 은사를 받게 됩니다. 진심으로 축하를 드립니다. 우리 모두는 즉시 예수님을 따랐던 ‘바르티메오’와 같이 한결같은 믿음으로 주님을 따라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