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제일 많이 불리는 노래가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잊혀진 계절’입니다. 모처럼 부모님과 함께 2박 3일 동안 고향방문을 다녀왔습니다. 제가 태어난 곳은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안덕리’라는 시골입니다. 마을 앞에는 작은 저수지가 있고, 뒤에는 험한 산이 있습니다. 어려서 고향을 떠났기 때문에 그리 추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씩 고향을 찾아가면 반가이 맞이해주시는 고향 어른들이 있습니다. 고향의 앞산에는 할아버지가 묻혀계신 선산이 있고, 조금 내려오면 외할아버지가 묻혀계신 선산이 있습니다. 아버님께서 1년에 한번 정도는 고향에 가서 조상들을 위한 미사를 했으면 하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전에는 못들은 척했는데 이제 아버님도 연세가 많아지시고, 효도 차원에서 고향 방문을 하였습니다.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함께 하면 좋았는데, 속으로는 그렇게 즐겁지는 않았습니다. 아주 어릴 때 말고는 부모님과 함께 여행을 다녀 본 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을 모시고 다니면 제가 신경을 써야 할 일들이 많기도 합니다. 운전하는 것을 그렇게 좋아 하지 않는 편인데, 고향을 다녀오면 2박 3일 동안 꼬박 운전을 해야 하기도 합니다. 휴게실에도 자주 쉬어야 하고, 고향어르신들을 만나면 인사를 드려야 하고, 서울에 살기 때문에 오랜 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지들과의 어색한 만남도 즐겁지는 않고 그랬습니다.
하지만 이번 고향 방문은 제게 잊지 못할 추억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부모님을 위해서 다녀왔다고 생각을 했는데, 부모님 때문에 가을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아버님의 첫 사랑 이야기도 들었고, 그런 아버지를 50년이 훌쩍 넘도록 변함없이 존경하고 사랑하는 어머니를 보았습니다. 어머니는 수십 년 동안 아버님의 조상들이 모셔진 선산을 다녀왔는데, 아버님은 이번에 처음으로 장인어른이 모셔진 선산엘 오르셔서 함께 기도하셨습니다. 아마도 장인어른께 이렇게 좋은 따님을 만나게 해 주셔서 감사의 인사를 드렸으리라 생각합니다.
내려 올 때 고산 본당의 공소로 있는 ‘되재’ 공소를 방문했습니다. 성당은 제대를 중심으로 가운데가 벽으로 막혀있었습니다. 예전에는 남자 교우들과 여자 교우들이 서로 마주 보지 않고 미사참례를 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공소의 뒷산에는 두 분의 신부님들의 무덤이 있었습니다. 30대의 젊은 나이에 이역만리 한국 땅에서 세상을 떠나신 프랑스 신부님들의 유해가 모셔진 곳입니다. 묘지석에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입니다.’ ‘교우들에게 묻노라! 최후의 심판 날에 하느님께 무어라 답하겠느냐!’ 무덤에 올라 두 신부님께서 남기신 글을 읽으며 신앙이 무엇인지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덤으로, 금산사에서 늦은 가을의 오후를 즐길 수도 있었고, 산중의 찻집에서 모처럼 어르신들과 차를 마셨습니다. 운암 댐이 있는 ‘옥정호’에서는 맛있는 쏘가리 매운탕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예부터 어른 말씀을 들으면 떡이 생긴다고 했습니다. 부모님을 위한다고 했지만 부모님 덕분에 동생수녀와 가을을 모처럼 마음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고향을 떠나는 날, 저녁 식사를 함께 하였습니다. 방송국에 다니셨던 작은 아버님은 제가 사제이니까 먼저 술을 받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교직에 계셨던 고모부님께서는 집안의 행사이니까 아버님이 먼저 술을 받으셔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순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망설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알려 주십니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