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어제 원주교구 구곡 성당의 김 영진 신부님께서 '자비의 예수님’ 성화를 소개해 주셨고, 본당 신축을 위한 모금 강론을 해 주셨습니다. 이제 곧 60이 되는 신부님께서 본당 신축을 위해서 신자들과 함께 모금강론을 다니고 계십니다. 본인을 위한 일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집을 세우기 위해서, 신들과 함께 기도하는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 기꺼이 힘든 수고를 하고 계셨습니다. 어제 신부님께서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 해 주셨습니다. ‘사랑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인간적인 사랑이다. 나에게 잘 해주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방인들도 하는 사랑이다. 두 번째는 하느님의 사랑이다. 이것은 아무런 조건 없이 자신의 것을 나누는 사랑이다. 재물과 시간과 능력뿐만 아니라, 목숨까지 내어 놓는 사랑이다. 신앙인은 바로 두 번째의 사랑을 배우고 실천하려는 사람들이다. 비록 그 길이 힘들어도 우리는 아낌없이 주는 사랑을 하셨던 예수님을 따라가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간결한 말씀이지만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한 달에 38만원의 정부 보조금으로 살아가는 할머니께서 매달 십만 원씩 성전 신축금을 봉헌한다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나눔은 봉헌은 많이 가져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하느님께로 향한 마음이 있을 때, 가능하다고 하셨습니다.
사제들과 사제들의 부모님이 있습니다. 사제들도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부모님들은 사제들이 하는 기도보다 훨씬 많이 기도합니다. 동료 사제들의 부모님을 보아서도 알 수 있고, 저의 부모님을 보아서도 알 수 있습니다. 저의 부모님은 매일 새벽 4시면 일어나시고, 새벽미사 가시기전까지 기도를 하십니다. 묵주기도, 성무일도, 성서쓰기, 미사참례, 피정과 같은 신앙생활을 기쁜 마음으로 하십니다. 손자들,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하시고, 특히 사제나 수도자인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하십니다. 그분들은 온 정성을 다해서 기도하십니다. 사제들과 수도자들이 직무에 충실하고, 기쁘게 살 수 있다면 그것은 부모님들의 기도가 크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도를 많이 하시는 분 중에 교구장이신 정진석 추기경님이 계십니다. 매년 신앙인들이 읽고 묵상할 수 있는 책을 출간하시고, 매일 교구의 구역장, 반장, 사제들의 부모님, 사제들을 위해서 2시간씩 기도를 하십니다. 기도의 힘이 추기경님께 지혜와 건강을 주시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성당에도 열심히 기도하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계십니다. 언제나 이른 새벽에 성당에 오셔서 미리 기도를 하시고, 미사에 참례하십니다. 우리 성당이 화목한 공동체를 이루어나가는 것도 그런 어르신들의 기도가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1독서는 ‘다니엘, 아나니야, 미사엘, 아자리야’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맛있는 음식과 술을 마시지 않았습니다. 야채와 물만 먹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살도 찌고, 건강하게 보였습니다. 하느님께 의지하고, 하느님의 뜻을 먼저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가난한 과부는 예수님께 칭찬을 받았습니다. 비록 삶이 힘들고 어려웠지만 주님의 제단에 정성껏 봉헌을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하느님께 인도하는 것은 우리의 능력, 재물, 학식, 직업이 아닙니다. 능력, 재물, 학식, 직업은 우리의 인격을 감싸주는 옷과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의 겉모습을 보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을 향한 우리들의 마음을 보십니다. 그 마음을 이웃과 세상을 향해 나누는 우리들의 정성을 보십니다. 새로운 한 주간을 시작하는 월요일입니다. 일주일은 168시간입니다. 하느님을 찬미하는 시간, 이웃을 사랑하는 시간, 성서를 읽고 묵상하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요? 16시간을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서 사용한다면 그것이 바로 신앙의 십일조입니다.
제가 베트남엘 잠시 다녀옵니다. 금요일까지는 복음묵상을 못 할 것 같습니다. 잘 다녀올 수 있도록 기도 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