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행복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을 좋아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언젠가 제가 적어 놓은 글인데, 누구의 이야기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에 와 닿습니다. 지난 월요일 아침이었습니다. 자매님께서 전화를 하셨습니다. 제게 전해 줄 것이 있다는 전화였습니다. 급한 것도 아닌 일인 것 같았고, 월요일 모처럼 쉬는 날이라서 전화를 받으면서도 편하지는 않았습니다. 자매님께서는 제게 한 할머니의 마음이라면서 작은 봉투를 하나 전해 주셨습니다. 제가 봉성체를 다니는 할머니셨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제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도,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어 하셨고, 그렇게 제게 봉투를 전해 주셨습니다.
가정 방문을 하는 일, 신자들의 이야기를 들어 드리는 것, 앞으로 본당의 일을 계획하는 것, 기도하는 것, 강의 청탁을 받고 준비하는 것, 대림특강을 듣는 것, 책을 읽는 것들은 제가 해야 할 일들입니다. 이런 일들을 좋아 할 수 있다면 저는 무척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의무감으로 하는 일들,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들을 좋아한다면 우리는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예수님께서도 해야 할 일들을 좋아하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십자가를 지는 일도, 복음을 전하는 일도, 힘들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을 좋아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짐과 멍에는 여러분을 행복하게 할 것입니다.’
대림시기에 우리가 자주 읽는 성서 말씀은 이사야 예언서입니다. 이사야 예언자의 사상과 신학은 초대교회의 신학과 사상에 많은 영향을 미쳤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도 많은 경우에 이사야 예언자의 글을 인용하셨습니다.
이사야서는 내용을 보아도 성서 전체와 닮은 점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선 전반부 39장은 구약의 내용과 마찬가지로 주로 심판의 내용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사야서 전체에 나오는 유대인들의 죄목을 보면 너무나 많습니다. 포도주와 독주에 취해 비틀거리는 모습(이사28:7), 예언자라 하면서 이상을 그릇되게 푸는 모습, 재판관이라 하면서 판결을 그릇되게 하는 모습, 관리라 하면서 뇌물을 일삼는 모습, 하느님을 경외한다고 하면서 마음은 멀리 떠나 있는 모습(이사29:13). 이것이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기도 한 것입니다. 이사야 1장 18절에서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씀으로 우리에게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얼마나 희망적인 말입니까? 죄로 짓눌린 인간에게 이보다 더 위로의 말이 어디 있겠습니까? 주홍같이 붉은 죄를 눈과 같이 희게 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후반 27장은 신약의 복음과 같이 하느님의 은혜의 말씀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더구나 신약이 세례 요한의 외침으로 시작되는데 후반부의 시작인 40장은 세례 요한의 등장을 예언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너희는 광야에서 주님의 길을 닦아라. 우리 하느님을 위하여 사막에 길을 곧게 내어라."(이사40:3)
더구나 이사야서가 기원전 740년경에 쓰여진 책인데 예언된 내용이 신약시대에 세례 요한과 예수님에 의해서 정확히 실현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광야에서 외치는 자인 세례 요한의 이야기는 물론 메시아의 예언이 담겨있는 7장, 9장, 11장, 그리고 53의 내용은 너무나 생생합니다. 먼저 7장에서는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라고 했는데 이 본문이 마태복음 1장 23절에서 그대로 인용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으로 그 예언이 실현된 것입니다.
9장에서는 "요르단 건너편과 이민족들의 지역이 영화롭게 되리이다.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봅니다. 암흑의 땅에 사는 이들에게 빛이 비칩니다.”라고 했는데 이것은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공생활을 시작할 것을 예언한 것으로 실제 그대로 실현되었습니다. 마태복음 4장 16-17절에서 역시 그대로 인용되고 있다.
11장에서는 "이사이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돋아나고 그 뿌리에서 새싹이 움트리라. 그 위에 지혜와 슬기의 영, 경륜과 용맹의 영 지식의 영과 주님을 경외함이다.”라고 했는데 이것은 이새의 후손인 요셉의 아들로 오신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을 때 비둘기 같은 성령이 강림하심으로써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수난을 예언하고 있는 53장은 너무나 유명합니다.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가 징벌을 받았고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낳았다. 우리는 모두 양 떼처럼 길을 잃고 저마다 제 길을 따라갔지만 주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악이 그에게 떨어지게 하셨다."(이사53:5-6)
뿐만 아니라 61장 1절에서는 예수님의 사명을 예언한 것인데 예수님이 이 말씀을 직접 인용하심으로써 자신이 그 예언을 실현하고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 하느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싸매어 주며 잡혀간 이들에게 희망을, 갇힌 이들에게 석방을 선포하게 하셨다." 우리는 이런 말씀을 확인하면서 또한 앞으로 될 일들을 예언하신 말씀에도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지금까지 이루어진 말씀이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면 앞으로 이루어질 말씀들도 우연은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사야가 활동하던 시대는 유다왕국에게는 참으로 힘든 시기였습니다. 시리아와 북 이스라엘의 동맹을 통해, 이스라엘을 침공하는 사건이 있었으며, 히스기야 왕 때에는 앗시리아의 산헤립에 의해 예루살렘이 포위공격 당하여 유다왕국의 존폐가 달린 일도 있었습니다. 이사야는 그 때마나 위대하신 하느님을 의지할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호소하였습니다.
우리가 대림시기를 지내는 것은, 우리의 능력과 우리의 업적 때문에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님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크신 사랑이, 우리의 허물과 잘못을 모두 용서하신다는 것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살면서,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우리에게 상처를 준 이들을 넓은 마음으로 보듬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