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기 신부님 대림특강 '기다림의 영성'

2009. 12. 19. 오전 10:31:34

글자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 목요일에는 정월기 신부님께서 ‘기다림의 영성’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해 주셨습니다. 저는 정 신부님과 3년간 함께 교구 사목국에서 일을 했습니다. 본인의 주장과 뜻을 내세우시기 보다는 함께 일하는 신부님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배려와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던 신부님이십니다. 철저한 자기관리와 하느님께 대한 열정으로 늦은 나이에 미국에 가셔서 공부를 하고 오셨습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삶으로 증거하는 신부님이십니다. 어제 신부님 강의의 핵심은 ‘기다림의 영성은 순간을 사랑하며 사는 것’이었습니다. 지나간 과거 때문에 슬퍼하거나 원망하지 말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 때문에 걱정하거나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10년은 너무 길고 힘들지 모릅니다. 1년도 그럴 수 있습니다. 1달도 길다면 긴 날들입니다. 아니 일주일, 하루도 길게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순간은 누가나 참을 수 있고, 순간은 누구나 잘 할 수 있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순간을 사랑하고, 기뻐하고, 참아내는 사람이 영원을 준비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현대사회는 심각한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작지만 소중한 것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황금만능주의는 인간을 상품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폭력은 가진 자들, 기득권자들의 힘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개인주의는 더불어 살아가는 이들의 아픔, 고통, 슬픔을 외면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는 현대사회가 주는 풍요와 번영을 누리고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풍요와 번영은 소수의 사람들에게 집중되어 있습니다. 빈부의 격차는 점점 심해지고 있으며, 굶주림과 가난, 질병과 전쟁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은 더욱 늘어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만드신 세상은 하느님의 창조질서를 어기고 있으며, 인류의 미래는 지구온난화와 인간의 존엄성이 상실되는 가운데 점차 어두워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어두워가는 미래를 희망으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세계화는 지역화로 극복할 수 있습니다. 박원순 변호사가 그 희망을 보여주었습니다. 지역의 주민들이 함께 연대하면 극복할 수 있습니다. 소비주의는 인간이 더욱 중요하다는 인식의 전환으로 극복할 수 있습니다. 돈보다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폭력은 사랑으로 극복해야 합니다. 개인주의는 공동체 운동으로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이런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또한 이것을 삶의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것은 ‘소공동체’ 운동입니다. 소공동체는 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웃의 이야기를 경청합니다.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하느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모이기 때문입니다.

신학자 폴 틸리히는 현대인들이 가지는 어두움을 3가지로 정의 했습니다.
그것은 공허감, 죄책감, 공포감입니다.
외국으로 유학을 가는 사람들은 처음에 낮선 환경에 적응하기가 어렵습니다. 언어와 음식이 다르고, 문화와 환경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저역시도 짧은 시간이지만 외국에서 생활하면서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사람들의 말도 잘 알아듣지 못하였고, 길도 몰랐으며, 무시당하는 순간들도 경험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신 것도 어쩌면 그런 것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으로서의 모든 권한과 능력을 포기하시고, 사람이 되셨으면 사람으로 살아가는 모든 것들이 힘들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고난의 순간에 하느님께 기도하셨고,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응답하셨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예수님께서는 삶의 한가운데서, 고통의 한 가운데서 하느님의 사랑을 느꼈고, 하느님께서 사랑하고 있음을 믿었습니다.

베트남의 반투엔 추기경님은 ‘순간을 사랑하며’라는 책을 쓰셨습니다. 이 책은 교황님을 위하여 피정지도를 하시면서 쓰신 글입니다. 이 책에서는 반투엔 추기경님은 17년간 감옥에 있으면서 체험했던 하느님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사랑하고 있다는 확신이 없다면, 하느님께서 함께하신다는 믿음이 없으면 견딜 수 없는 시간들이었다고 말을 합니다. 정년퇴직을 하고 집에서 지내는 분들, 실직당하여 일을 할 수 없는 분들, 몸과 마음이 병들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분들은 커다란 상실과 공허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런 분들은 사랑받고 있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사랑할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절망의 순간, 좌절의 순간, 고통의 순간을 이겨 낼 수 있습니다.

죄책감은 우리를 하느님과 멀어지게 하는 그릇된 생각입니다. 부모님의 사정으로 보육원이나, 시설에 입양된 아이들은 대부분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합니다. 나의 잘못 때문에 부모님께서 나를 버리셨다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고 합니다. 그런 아이는 밝은 미래를 볼 수 없고, 자신의 소중함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됩니다. ‘나는 안 돼!’라는 열등감은 바로 죄책감에서 나옵니다. 많은 것을 가진 사람들, 많이 배운 사람들, 높은 직책에 있는 사람들이 열등감과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게 말을 합니다. ‘나는 내가 얼마나 모르는 것이 많은지를 알았다.’ 자만과 교만도 우리를 하느님과 멀어지게 하지만 죄책감 또한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 죄가 진흥같이 붉어도 눈처럼 희게 하리라. 너희 죄가 다홍같이 붉어도 양털같이 희게 하리라.’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선한 사람 아흔 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하나를 더욱 좋아하십니다.’ ‘성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아픈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합니다. 나는 이스라엘의 아픈 사람들을 위해서 왔습니다.’ 죄책감은 무엇으로 극복 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가 우리의 죄보다 더욱 크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공포감은 자유와 변화를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커다란 장애물입니다. 우리의 부모님들은 일본의 식민통치 시대를 살았습니다. 칼과 권력을 지닌 일본 사람들은 억압을 받는 조선의 백성들에게 공포감을 심어주었습니다. 폭력과 고문은 세상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제가 사는 시대에도 국민들의 자유와 언론이 억압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말을 하지 못하였고, 벌거벗은 임금님께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는 시대를 살았습니다. 잡혀하고, 제대로 재판을 받지 못하고, 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갔었고, 고문을 당하고 죽기도 했습니다. 이런 공포감을 이겨내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죽음의 신앙이 아니라, 부활의 신앙을 갖는 것입니다. 비록 처참하게 고문을 당하고, 십자가를 지고 가셨으며, 허망하게 죽음을 당했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런 예수님을 다시 살려 주셨습니다. 민주주의라는 꽃은 땀과 피와 눈물이 있어야 피어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전에 읽은 글입니다. 어느 할아버지가 앞에 있는 큰 산에서 흙을 퍼나 나르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물어보았습니다. ‘왜 그렇게 흙을 퍼나 나르십니까?’ 할아버지는 말하십니다. ‘저 산 때문에 농사를 짓기가 힘이 들어서 산을 깎아 내려고 합니다.’ 사람들은 ‘할아버지는 나이도 많으신데 어떻게 그런 일을 하십니까?’ 라고 조롱을 했습니다. 할아버지의 대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저 산은 더 높아질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나와 나의 후손들은 계속해서 이 일을 할 것이고, 언젠가는 저 산이 모두 깎일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단거리 경기’가 아닙니다. 우리의 삶은 하느님과 함께하는 ‘이어 달리기’입니다. 지금의 고난과 아픔은 나의 후손들을 위한 밑거름이고, 지금 나의 성공과 기쁨은 나의 선조들이 뿌린 씨가 열매를 맺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우리는 순간을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 수 있습니다.

며칠 전에 본당의 인터넷 카페에서 읽은 글을 정월기 신부님께서도 말씀해 주셨습니다. 건설회사에서 모델 하우스를 짓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제 곧 정년퇴직을 얼마 남겨두지 않았습니다. 회사의 사장님은 어느 날 퇴직을 앞둔 건축기사에게 이런 부탁을 했습니다. ‘재료는 아끼지 마시고 최고의 모델 하우스를 만들어 주세요.’ 건축기사는 생각을 했습니다. ‘회사의 사장님은 나를 퇴직하는 날까지 일을 시키는 구나.’ 그러면서 엉망인 재료로 대충 모델 하우스를 만들었습니다. 드디어 퇴직하는 날, 사장님은 직원들 앞에서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여러분 오늘 이 모델 하우스는 그동안 회사를 위해서 헌신하신 건축기사를 위해서 마련했습니다.’ 사장님의 말을 듣고 건축기사는 부끄러웠습니다. 사실 그런 줄 알았다면 정말 최고의 집을 만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건축기사는 자기 마음대로 생각을 하였고, 엉망인 집을 만들고 말았습니다.

성서는 말을 합니다.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늘 감사하십시오. 항상 기도하십시오.’ 우리는 이 성서의 말씀을 재료로 삼아 지금 이 순간을 충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기다림의 영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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