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제 3주일

2009. 12. 13. 오전 5:22:38

글자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교회가 정한 자선주일입니다. 자선이란 무엇입니까? 사전을 찾아보았습니다. 慈善:남을 불쌍히 여겨 도와줌. 自選: 1 자기가 자기 자신을 선정함. 2 자기 스스로 자기의 작품을 골라 뽑음. 子船: 모선(母船)에 딸린 배. 물론 우리가 오늘 이야기하는 자선은 스스로 선택하는 것도 아니고, 큰 배를 따라다니는 작은 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남을 불쌍히 여겨 도와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맹자는 우리 사람들에게는 4가지의 품성이 있다고 했습니다.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입니다.’ 불쌍한 사람을 보면 도와주고 싶어 하는 것은 사람들이 가진 고유한 품성이라고 말을 합니다. 주역은 또 이렇게 말을 합니다.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 선행을 행하는 집에는 반드시경사가 찾아온다.’는 이야기입니다. 동양에서는 우리가 자선을 베푸는 것은 우리에게 있는 품성이며, 그런 자선은 결국 우리를 이롭게 한다고 말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착한 사마리아’사람의 비유를 들어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혈통이나, 직책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강도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고, 길에 쓰러져 있는 사람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는 사람이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쓰러져 신음하는 사람을 못 본척하고 스쳐지나간 사람들은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 없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마태오 복음 25장에서 유명한 ‘최후의 심판’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 중에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가난하고, 헐벗고, 병든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하느님께 해 준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 그렇게 따뜻하게 해 드렸으니, 천상의 잔치에 초대 받을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자선은 단순히 지금 나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고, 자선은 우리에게 있는 품성이 아니라고 합니다. 자선은 나를 하느님 나라로 이끌어 주는 길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일생을 가난한 이들과 함께 했던, 빈자의 어머니 마더 데레사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하고 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랑을 그 일에 쏟아 넣었는가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주고 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랑을 그러한 증여에 쏟아 넣었는가가 중요합니다.”우리는 지금 한해를 정리하는 12월 달을 지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대림시기를 지내고 있습니다.
올 한해를 돌아보면서 나는 과연 내가 하는 모든 일에 나의 사랑과 나의 마음을 담았는지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또한 나는 내가 가진 것들을 이웃과 나누기보다는 소유하려고만 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오늘 제 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항상 기뻐하라고 이야기합니다.” 사실 바오로 사도가 그 말을 할 때, 바오로 사도는 감옥에 있었습니다. 감옥이 호텔도 아니고 어디 휴양지도 아닌데 항상 기뻐하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런데 감옥에 있으면서도 항상 기뻐하라고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분은 점점 커져야하고, 나는 점점 작아져야 합니다.”라고 말했던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던 바오로 사도의 철저한 겸손함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교우 여러분!
많이 소유한 사람이 반드시 많이 나누는 것은 아닙니다.
'좋은 일은 작다고 하여 미루지 말고, 악한 일이 비록 작다고 행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선현의 말씀이 귀를 울립니다.

댓글 1

  • 2009년 12월 13일 오후 10:25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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