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4주간 목요일

2009. 12. 24. 오전 8:12:19

글자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론과 실제는 다를 때가 많습니다. 지나고 나면 모든 것이 다 추억이고, 아름다움이겠지만 생의 한 가운데서 온 몸으로 부딪치는 사람들은 추억과 아름다움을 느낄 여유가 없을 때가 많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치료하고, 유명해진 의사가 세상을 떠날 때 남긴 노트가 한권 있었습니다. 그 노트는 상자에 밀봉되어 있었고, ‘병을 고치고 건강하게 사는 비법’이라는 제목이 적혀있었습니다. 의사들과 사람들은 그 노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동안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알게 된 지식들을 적어 놓았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의사가 남긴 노트는 경매로 팔리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사람들은 높은 가격을 불렀고, 가장 많은 금액을 부른 의사에게 팔렸습니다.

의사는 저녁에 긴장된 마음으로 상자를 열었고, 노트를 펼쳐보았습니다. 노트에는 환자들을 치유하는 비법이나, 새로운 의학 기술이 적혀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짧은 글이 있었습니다. ‘건강을 유지하려거든 머리를 차게 하고, 발은 따뜻하게 하십시오.’ 머리를 차게 한다는 것은 온 몸에서 나오는 열이 머리로 올라가서 터지지 않게 하라는 뜻이었습니다. 발을 따뜻하게 하라는 것은 온 몸의 혈액이 골고루 순환되게 하라는 뜻이었습니다. 체내의 열을 조절하고, 피가 원활하게 돌게 하는 것이 병을 예방하고, 건강을 지키는 지름길이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속상한 일, 화나는 일, 원망이 생겨나면 그것과 싸우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나귀의 고삐를 잡고 당기면 나귀는 내 곁에 머물게 되듯이, 원망, 분노, 미움의 고삐를 내가 계속해서 잡고 있으면 결코 자유롭게 될 수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감정이 있고, 그 감정의 고삐를 놓아버리는 것이 결코 쉬운 것이 아님을 또한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수련이 필요하고, 기도가 필요합니다. 즈가리야는 ‘의심’이라는 고삐를 잡고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권능을 의심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의심했습니다.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의심했습니다. 그는 단순히 말을 못하는 벙어리가 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이제 즈가리야에게는 수련과 침묵이 필요했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탄생하는 날, 즈가리야는 수련과 침묵을 끝낼 수 있었고, 이제 의심이라는 ‘고삐’를 놓아버릴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즈가리야의 노래’를 들었습니다. 하느님의 영광과 하느님의 권능을 받아들인 즈가리야는 아름다운 노래를 부를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반드시 약속을 지키신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결코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기하지 않는 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지존하신 분의 예언자가 되어야 하고, 그분의 길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어둠과 죽음의 그늘 밑에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실 것임을 믿고 있었습니다.

이제 성탄은 몇 시간 남지 않았습니다. 오늘 저녁 10시에 우리는 성탄 밤 미사를 봉헌합니다. ‘우리는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이들에게 평화!’라고 노래를 합니다. 주님의 성탄이 모두에게 즐겁고, 평화롭고, 희망의 소식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주님의 성탄은 ‘번뇌와 갈등, 욕망과 미움’의 고삐를 놓아 버리는 사람에게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 수련과 기도를 통해서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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