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주간 화요일

2010. 1. 19. 오전 9:02:54

글자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어제 교우분과 이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사람을 믿는 것과 의심하는 것 중에 어떤 것이 더 좋은 것일까!’ 가능성은 몇 가지가 있습니다. 상대방이 진실을 이야기 했는데, 내가 의심을 했을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 상대방은 억울할 것입니다. 진실을 이야기 했는데 그것을 믿지 못했으니 나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일입니다. 상대방이 진실을 이야기 했고, 나도 그 이야기를 믿어주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는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일입니다. 상대방도 자신의 이야기를 믿어주는 친구가 있어서 좋고, 나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믿어 주었으니 좋은 것입니다. 상대방은 거짓을 이야기 했는데 내가 믿어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이런 사람을 어리석다고 말을 하기도 합니다. 우리의 어머니들은 자녀들이 거짓을 이야기 했을 때도 믿어 주곤 합니다. 이런 경우에 거짓을 말한 상대방은 진실을 말하지 않았으니 양심의 가책을 받을 수 있습니다 믿어주는 친구를 속였으니 좋은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거짓까지도 믿어주는 나는 그 거짓이 드러날 때까지는 상대방을 믿을 수 있었으니 마음은 편합니다. 또 상대방의 거짓이 드러났을 경우라도 상대방은 미안할 일이지만, 나는 그런 거짓까지도 믿어 주었으니 잘못한 것은 아닙니다. 물론 약간 손해를 볼 수도 있고, 속이 상할 수도 있지만 사람이 사람을 믿는 다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믿을 때, 우리는 희망을 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어떠하신지 생각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내가 진실을 말씀드려도 믿어 주시고, 내가 거짓을 말씀드려도 나무라지 않으십니다. 어머니가 방황하는 아들을 끝까지 믿어주는 것을 봅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랑이 크시고 자비하시니 우리를 끝까지 믿어 주시리라 생각합니다. 하느님께서 몰라서 그러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에게 있는 가능성을 보시고, 우리가 다시금 진실의 옷을 입을 수 있으리라 믿으시기 때문에 우리를 기다려 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요즘 고사성어인 ‘尾生之信’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오래된 일이지만 가르침을 주는 말입니다. 미생이라는 사람이 친구의 약속을 믿고 다리 아래에서 기다리다가 친구는 오지 않았는데, 그만 홍수가 났습니다. 친구가 오리라고 믿었던 미생은 다리 아래에 계속 있었고, 결국 죽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친구가 온다고 했으니 기다리는 것이 당연하지만 강물이 범람을 하면 그 자리를 피해야 한다고 말을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 이야기는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친구의 약속도 중요하지만 일단 위험은 피하는 것이 상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같은 이야기인데 어떤 분은 이렇게 말을 합니다. 친구를 기다리다 강물에 휩쓸려 죽은 미생은 끝까지 약속을 지켰기에 ‘귀감’이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약속을 지키지 않은 친구는 비록 살았지만 두고두고 후회할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尾生之信’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실리와 원칙’을 다시금 생각해 봅니다. 언젠가 말씀 드린 적이 있지만 원칙이 없는 실리는 혼란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또한 실리가 없는 원칙도 공허할 수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사무엘은 ‘이사이’의 아들 중에서 한명을 선택하여 기름을 부어주었습니다. 실리의 측면에서는 다윗을 선택하는 것은 바람직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사무엘은 원칙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뜻이었습니다. 하느님의 뜻은 실리 때문에 바뀔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뜻은 사람의 잣대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제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명확한 원칙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합니다.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고,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세례를 받은 우리들은 이제 우리의 마음과 몸에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 하느님의 뜻과 하느님의 영광은 바뀔 수 없는 것입니다. 그 하느님의 뜻은 무엇을 통해서 드러날까요? 그것은 사람을 믿어주고, 사람을 사랑할 때 드러납니다.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개발과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 성장은 편안함을 줄 수 있지만 우리를 하느님께로 이끌어 가지 못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돈과 명예 그리고 권력’은 편안함을 주지만 그것만을 따라가면 거짓과 불의의 늪 속에 빠지기 쉽습니다.

“사람을 믿어주고, 사람을 존중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입니다.”

댓글 1

  • 2010년 1월 19일 오후 2:05

    아멘!

매일복음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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