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요즘 우리 사회를 가장 뜨겁게 달구는 문제는 ‘세종시’입니다. 세종대왕께서 연일 그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실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세종시’의 문제는 2002년 대통령 선거 때부터 생긴 것이라고 합니다. 당시, 대선 후보였던 ‘노무현 전직 대통령’은 행정수도를 옮기겠다고 공약을 했습니다. 대통령에 당선이 된 노무현 전직 대통령은 행정수도를 옮기려고 했지만, 당시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따라서 행정수도 이전은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야당과 합의를 하여 ‘9부 2처’의 행정 기능이 옮기고, 다양한 기능을 가진 행복도시를 만들기로 합의를 하였습니다. 2007년 대선 때, 지금의 이명박 대통령도 ‘행복도시’를 건설하겠다고 약속을 했고, 대통령이 된 후에도 그 약속을 이행하겠다고 몇 번 약속이행을 다짐하였습니다. 그런데 작년 연말에 총리가 바뀌면서 지금의 총리는 행정부의 기능이 옮겨가는 세종시는 문제가 있다고 주장을 하였습니다. 대통령도 국익을 위해서는 욕을 먹더라고 잘못된 계획, 잘못된 합의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을 하였습니다. 정부는 지금 세종시 수정안을 만들었고, 지난 월요일에 국무총리는 수정안을 발표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잠시 생각을 합니다. 왜 행복도시를 건설하면서 행정부의 기능을 옮겨가려고 했을까? 그 배경은 국토의 균형 발전과 수도권으로 집중된 인구의 과밀을 해소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정부는 행정부의 기능을 일부 옮기는 것은 정부의 업무 수행에 비효율적이라는 이유로 행정부의 일부 기능을 옮기는 세종시의 원안을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을 하면서, 새로운 수정안을 발표하였습니다.
오늘의 제1독서는 우리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팔리스틴인들과 자주 전쟁을 하였습니다.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하느님의 계약의 궤’를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팔리스틴인들과의 전쟁에서 패배를 하였습니다. 팔리스틴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져온 계약의 궤를 두려워하면서도 단결을 하였고, 힘을 합쳐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싸웠고, 이겼습니다. ‘계약의 궤’가 전쟁에서 승리하는 ‘비책’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물론 계약의 궤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중요한 상징이었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단결과 하나 된 마음이었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삼권분립’입니다. 입법부는 법률을 제정하고, 행정부는 그 법률을 시행하고, 사법부는 그 법률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입법부에서 여당과 야당이 합의를 했고, 몇 년씩 그 법률을 근거로 실행되어오던 사업을 다시 바꾸는 것은 그만큼 많은 합의와 대화 그리고 설득의 과정이 필요할 것입니다. 행정부의 생각과 몇몇 사람들의 생각이 ‘계약의 궤’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런 ‘계약의 궤’를 가지고는 국민의 마음을 바꾸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많은 군사가 있었고, 계약의 궤가 있었지만 팔리스틴인들과의 전쟁에서 패배를 하였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단합된 힘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목적이 선하고, 뜻이 좋다고 하더라도 그 절차와 방법이 잘못되면 그 좋은 목적과 선한 뜻의 빛이 퇴색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세종시의 문제는 다시 입법부의 몫으로 되돌아 갈 것입니다. 행정부의 의지와 뜻은 입법부의 법률을 근거로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국익과 백년대계’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고, 국민과의 약속과 신뢰를 중요하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대화와 합의를 통해서 해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신앙도 생각을 합니다.
신앙생활을 잘하고,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키우며,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최선의 비결은 무엇일까요? ‘계약의 궤’처럼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나의 신앙을 키우고, 행복하게 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나의 마음을 하느님께로 향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은총과 사랑을 받아들이려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나병환자’는 온전히 주님께 마음을 열었고, 주님의 도우심을 간절하게 청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나병은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