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주간 금요일

2010. 1. 22. 오전 5:17:25

글자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학교 다닐 때 선생님께서 조식의 ‘칠보시’라는 것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조조가 죽고 난 후 위나라는 조조의 장남인 조비가 후계를 잇게 됩니다. 삼국지에 의하면 조조는 삼남인 조식에게 왕위를 이어주고 싶었던 마음이 더 있었나 봅니다. 그러나 어느 역사이던 현실은 냉정하고 권력은 냉혹하여 집권자들은 라이벌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조비의 신하들은 왕의 동생을 죽일 것을 왕에게 부추기고 드디어 조식은 형 앞에 잡혀와 죽음의 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조비는 문장가인 조식에게 7보를 걸으면서 시를 지으라고 명령합니다. 7보 내에 시를 짓지 못하면 가짜 문장가이므로 그 자리에서 죽여 버리겠다고 합니다. 조식이 숨도 돌리지 않고 즉각 읊어버린 시가 ‘칠보시’입니다. 삼국지에 의하면 이 글로 인하여 조비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뺨으로 흘렀다고 전해집니다. 그리고 신하들에게 ‘자신이 죽이기에는 너무 아까운 아우이다. 포박한 줄을 풀어주어라. 그리고 그의 생명도 살려주어라.’라고 하였습니다.

“煮豆燃豆其(자두연두기)
 豆在釜中泣(두재부중업)
 本是同根生(본시동근생)
 相煎何太急(상전하태급)

콩깍지를 태워 콩을 볶누나.
콩은 가마솥 속에서 운다.
본시 한 뿌리에서 나왔거늘
끓이고, 끓고 어인 일이뇨. "

친구들의 우정을 이야기한 유명한 말 중에 ‘관포지교’라는 것이 있습니다. 관중과 포숙의 우정입니다. 관중은 포숙에 대해서 이렇게 말을 합니다.
"우리가 사업을 할 때 내 몫을 더 챙겼다. 그러나 포숙은 나를 나무라지 않았다. 내가 본디 가난했기 때문에 더 필요하다고 이해해 주었다. 내가 미숙해서 포숙에게 피해를 주었을 때도 포숙은 나를 원망하지 않았다. 때를 잘못 만나서 그렇다고 용서해 주었다. 내가 싸움터에서 3번이나 도망을 쳤을 때 나를 비겁하다고 하지 않았다. 내가 늙으신 노모가 있으니 효성 때문에 그렇다고 말을 하였다. 내가 공자의 도를 따르지 않았을 때, 나를 지조 없다고 하지 않았고 세상의 흐름을 읽을 줄 안다고 하였다. "

우리는 모두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께로 돌아가야 하는 형제자매입니다. 그런 우리들이 서로 원망하고, 서로 싸우고, 서로 미워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관중을 사랑하고, 용서하고, 이해했으며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받아들였던 포숙의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을 용서하고, 사울을 죽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을 하느님께 의지하고 하느님께 맡겨 드렸습니다.

검찰, 변호사, 판사는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입니다. 비록 하는 일은 서로 다르지만 서로에게 감정적으로 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법을 배웠으니 법과 원칙으로 일을 해야 하겠습니다. 법과 원칙을 따지기 전에 정말 같은 뿌리에서 나온 사람이라는 것을 인식했으면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12명의 제자들을 뽑았습니다. 제자들에게 필요한 것도 ‘관포지교’의 우정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외모와 능력을 보시고 선발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서로 누가 높은 자리에 오를 것인가를 놓고 다툰 적이 있었습니다. ‘욕심, 시기와 질투’는 우리가 모두 한 형제이며 자매임을 잊어버리게 합니다.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주며, 사랑의 눈으로 바라 볼 때, 우리는 주님의 사랑받는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댓글 1

  • 2010년 1월 22일 오전 10:57

    아멘!

매일복음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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