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며칠 전, 텔레비전에서 이런 대사가 있었습니다. 남자가 여자에게 이렇게 질문을 합니다. ‘어디로 가는지 묻지 않으십니까?’ 여자는 남자에게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어디로 가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누구와 함께 가느냐가 중요하지요.’ 사랑하는 남자에게 여자는 이제 그 남자가 어디로 가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남자와 헤어지지 않고, 함께 가는 것이었습니다.
초대교회의 순교와 신앙을 다룬 영화중에 ‘Quo Vadis Domine’가 있습니다. 이 말의 뜻은 ‘주님 어디로 가시나이까?’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고, 박해의 두려움과 공포가 너무 커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갈 결심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저 앞에 주님께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주님께 이렇게 말을 합니다. ‘주님 어디로 가시나이까?’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는 로마로 갈 것이다.’ 이 말씀에 베드로 사도는 다시금 용기를 내고, 손에 들고 있던 지팡이마저 던져 버리고 주님과 함께 로마로 가서 순교하였다고 합니다. 베드로 사도에게 이제 어디로 가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과 함께’라면 그곳이 어느 곳이든지 상관이 없었습니다.
지난주에 동창 신부들과 함께 며칠 동안 휴가를 다녀왔습니다. 휴가를 떠나는 장소도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휴가를 ‘누구와 함께 가느냐!’도 중요합니다. 마음이 맞고, 뜻이 통하고, 오랫동안 우정을 함께 나누었던 동창 신부들과의 휴가는 어디를 가도 즐겁고 재미있는 휴가이기 때문입니다. 가는 곳이 비록 생각보다 아름답지 않았다고 해도, 교통이 불편했다고 해도, 고생을 했다고 해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그것도 추억이고, 즐거움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 다시금 삶의 자리로 돌아올 것입니다. 흔히들 ‘전쟁’이라고 말을 하듯이, 귀성길과 귀경길은 힘든 여정입니다. 올해는 눈도 많이 왔고, 연휴기간도 짧아서 더욱 힘들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고향을 찾아가는 것은 고향이 아름답고, 추억이 깃든 곳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곳에 사랑하는 부모님, 정겨운 이웃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목요일에 교구 ‘인사이동’이 있었습니다. 신부님들은 이제 정들었던 본당과 임지를 떠나서 새로운 곳으로 가게 됩니다. 사제생활을 하면서 자주 겪게 되는 일이지만 정든 곳을 떠난다는 것은 언제나 부담입니다. 새로운 곳에서 적응을 하는 것도 또한 긴장입니다. 그러나 사제들이 아무런 조건 없이 새로운 곳으로 향해 가는 것은 주님과 함께 가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함께 하시면 그곳이 어느 곳이든 가야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야고보 사도는 먼 길을 떠나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을 합니다. “나의 형제 여러분, 갖가지 시련에 빠지게 되면 그것을 다시없는 기쁨으로 여기십시오. 여러분도 알고 있듯이, 여러분의 믿음이 시험을 받으면 인내가 생겨납니다. 그 인내가 완전한 효력을 내도록 하십시오. 그리하면 모든 면에서 모자람 없이 완전하고 온전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신앙인들에게 ‘어디에 있느냐!’도 중요하지만 ‘누구와 함께 있느냐!’가 더 중요할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하는 삶은 그곳이 어느 곳이든 이미 행복한 삶이고, 이미 은총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