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때 아닌 눈이 전국적으로 내리고 있습니다. 강원도 산간지방에는 대설주의보가 내려질 정도로 눈이 왔다고 합니다. 눈이 내리면 예전에 군대에서의 생각이 납니다. 특히 밤에 눈이 내리면 새벽에 기상을 해야 합니다. 사령관이 출근하기 전에 도로의 눈을 모두 치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선임 병들은 경험도 많고, 요령을 잘 알기 때문에 앞장서서 눈을 치웁니다. 이제 막 자대에 배치된 신임 병들은 고참들이 하는 것을 보고 배우면서 눈을 치웠습니다. 새벽부터 일어나서 눈을 치우고 나면 기분도 좋았고, 아침식사도 맛있게 먹었던 기억입니다. 후임 병들을 챙겨주고 솔선수범하던 선임 병들이 생각납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의 어원은 다음과 같습니다. "14세기 백년전쟁 당시 프랑스의 도시 ‘칼레’는 영국군에게 포위당했습니다. 칼레는 영국의 거센 공격을 막아내지만, 더 이상 원병을 기대할 수 없어 결국 항복을 하게 됩니다. 후에 영국 왕 에드워드 3세에게 자비를 구하는 칼레시의 항복 사절단이 파견됩니다. 그러나 점령자는 ‘모든 시민의 생명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누군가가 그동안의 반항에 대해 책임을 져야한다.’며 ‘이 도시의 대표 6명이 목을 매 처형 받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칼레시민들은 혼란에 처했고 누가 처형을 당해야 하는지를 논의했습니다. 모두가 머뭇거리는 상황에서 칼레시에서 가장 부자인 ‘외스타슈 드 생피에르(Eustache de St Pierre)’가 처형을 자청하였고 이어서 시장, 상인, 법률가 등의 귀족들도 처형에 동참합니다. 그들은 다음날 처형을 받기 위해 교수대에 모였습니다. 그러나 임신한 왕비의 간청을 들은 영국 왕 에드워드 3세는 죽음을 자처했던 시민 여섯 명의 희생정신에 감복하여 살려주게 됩니다. 이 이야기는 역사가에 의해 기록되고 높은 신분에 따른 도덕적 의무인 ‘노블레스 오블리제’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사회가 발전하고, 국민의 의식이 발전할수록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은 먼저 모범을 보인다고 합니다. 대표적인 행동으로 지도층의 자녀들은 먼저 군 복무를 충실하게 합니다. 자신들의 재산을 사회와 국가를 위해서 아낌없이 기부합니다. 많이 배우고, 많이 가진 것은 자신들의 노력과 능력 때문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은 취임 3주년을 시작하면서 우리 사회의 통합을 위해서 3대 비리를 바로잡겠다고 하였습니다. ‘토착비리, 교육비리, 권력형 비리’입니다. 이러한 비리가 계속 된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아직 선진문화를 이룩하기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서말씀은 신앙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하느님께서는 새로운 땅에서 살아가게 될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제 내가 너희에게 실천하라고 가르쳐 주는 규정과 법규들을 잘 들어라. 그래야 너희가 살 수 있고, 주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 그곳을 차지할 것이다. 평생 너희 마음에서 떠나지 않게 하여라. 또한 자자손손에게 그것들을 알려 주어라.” 신앙인이 된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계명과 규정을 더욱 충실하게 실천하는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도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나라에서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우리는 사순시기를 지내고 있습니다. ‘기도, 희생, 나눔, 봉사’를 충실하게 실천하여서 하느님 나라에서 큰 사람으로 불릴 수 있도록 해야 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