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준 신부님 사순특강

2010. 3. 17. 오전 6:5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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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 금요일에 신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영성신학을 가르치시는 전영준 바오로 신부님께서 ‘架上七言’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해 주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오늘은 신부님의 강의 내용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시간 순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정리해 주셨습니다.

첫 번째는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지금 자기들이 하는 일을 모릅니다.(루가23,34)’였습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예수님께서는 원망과 분노를 말씀하지 않으시고,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했던 사람들을 용서해 주시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몰라서 그런 것이니, 그 죄를 묻지 말아달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이 가르침은 초대교회에서부터 계속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첫 순교자인 스테파노도 자신을 돌로 쳐서 죽이는 유대인들을 용서해 주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사도들도 자신들을 박해하는 이들이 몰라서 그런 것이라고 용서를 청하고 있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도 자신을 암살하기 위해서 총을 쏜 청년을 찾아가서 용서해 주셨습니다. 신앙인인 우리들은 용서를 예수님의 유언으로 생각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두 번째는 ‘진실히 당신에게 이르노니, 당신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입니다.(루가23,43)’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매달린 오른쪽의 죄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십자가에 매달리는 것은 우리의 죄를 보면 당연한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 주님께서 영광의 자리에 오르시면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도의 이야기를 들으시고, 아무것도 묻지 않고, 낙원을 약속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용서해 주고 싶으셔도, 우리가 회개하지 않으면 용서하실 수 없습니다. 에제키엘 예언자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죄인이라도 회개하여, 하느님께로 돌아오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양심을 속이고, 자리를 모면했다 할지라도, 집에 돌아오면 이불을 덮어쓰고라도 우리의 잘못을 인정하고 고백할 수 있어야 겠습니다. 그래야 하느님께서 용서하실 수 있습니다.

낙원이란 담이 둘러쳐진 정원과 같은 의미입니다. 임금님은 궁궐 안에 살면서 높은 공을 세운 사람은 궁궐 안으로 초대해서 마치 친구처럼 대화를 나누면서 정원을 거닐곤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함께 매달린 우도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십니다. 당신은 오늘 나와함께 낙원에서 함께 거닐 것입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뉘우치면 마지막 순간에도 구원을 받을 수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우도처럼 은총을 받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운동선수가 끊임없이 훈련을 하듯이, 신앙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늘 악한 길을 걷던 사람이 갑자기 선한 길로 들어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우리가 늘 선한 길을 걷는다면, 마지막 순간에 선한 길을 선택하는 것이 쉽습니다. 어느 길을 선택할 것인가는 우리의 몫입니다.

세 번째는 ‘어머니 이 사람이 당신의 아들입니다. 요한! 이분이 당신의 어머니입니다.(요한 19,26-27)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교회를 상징하는 요한에게 어머니를 부탁하였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성모님을 교회의 어머니로 공경하고, 사랑을 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머니에게 교회를 상징하는 요한을 부탁합니다. 그래서 성모님께서는 교회의 어머니가 되셨고, 세상이 하느님과 멀어지고, 폭력과 전쟁으로 슬픔과 고통이 가득할 때, 발현하십니다. 이는 우리가 왜 성모님을 우리의 어머니로 공경하는지, 성모님께서 왜 세상에 발현하시는지를 설명하는 신학적인 근거가 됩니다.

네 번째는 ‘목마르다.(요한19,28)’입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어린양’이셨음을 자주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출애굽 당시에 있었던 기억을 되살리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랐고, 하느님께서는 맏아들을 죽이는 재앙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파스카’입니다. 양의 피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바친 희생의 제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목마르다고 하셨을 때, 사람들은 신포도주를 듬뿍 적신 해면을 우슬초 가지에 꽂아 예수님의 입게 갖다 대었습니다. 요한사도는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속죄의 어린양이’ 되셨음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 목마르다고 하신 것은 단순히 육체적인 갈증을 말 할 수도 있지만, 진리에 대한 목마름이라고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주 말하였습니다. ‘너희 지치고 목마른 자들은 다 나에게로 오라! 나의 멍에는 편하고 가볍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우리가 성당에 오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생각합니다. 단순히 의무감에서 오는 것이기보다는 진리에 대한 목마름 때문이어야 하겠습니다. 두드리면 열리고, 찾으면 얻고, 구하면 받을 것입니다. 진리에 목마른 사람은 행복하다고 하셨습니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주변을 보면 진리에 목말라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찾는 것은 세상의 것을 찾아 헤매는 우리들과는 다른 것을 봅니다.

다섯 번째는 ‘아버지 아버지 어찌하여 저를 버리시나이까?(마태27,46/ 마르15,34)’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을 원망하여 부르는 것은 아닙니다. 신앙의 여정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부재하심’을 체험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피아노를 배우는 사람이 처음에는 쉬운 것을 배우기 때문에 재미를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어려운 곡을 연습해야 합니다. 그런 과정에 이르면 막막하게 됩니다. 그동안 배운 것이 다 소용없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과정을 참아내면 피아노를 더 잘 연주할 수 있게 되고, 실력은 향상되게 됩니다. 학문, 예술, 운동을 배우는 과정에서는 꼭 거치는 일입니다. 신앙의 여정에서도 이런 과정을 겪게 됩니다. 그것을 잘 참아내면 하느님과 함께하는 참된 기쁨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과정에서 넘어지면 우리의 신앙은 퇴보할 수도 있으며, 참된 기쁨을 맛볼 수 없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느님의 부재를 경험하셨다면, 우리들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많이 배웠다는 사람, 교만한 사람들은 ‘하느님의 부재’를 체험하게 되면 절망을 느끼고, 체념하게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오직 겸손함이 ‘하느님의 부재’를 넘어서 참된 진리에로 우리를 이끌어 줍니다.

여섯 번째는 ‘아버지 제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기나이다.(루가23,46)’입니다. 하느님의 부재를 넘어서면 이제 평온함을 찾게 됩니다. 이제 모든 것을 하느님의 뜻에 따라 맡기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 나의 형제요, 자매입니까!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서 사는 사람입니다. 아버지 아버지 하고 부른다고 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갑니다.’라고 말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겟세마니 동산에서 고뇌의 기도를 바치셨습니다. ‘아버지 가능하시면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하지만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 참 하느님이시면서 참 인간이신 예수님께서도 깊은 고뇌를 겪으셨습니다. 하물며 우리야 오죽하겠습니까! 바오로 사도는 로마서 12장 2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정신을 새롭게 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분간하도록 하십시오.’ 모든 것을 하느님 아버지께 맡겨드리는 순종의 자세를 배울 때, 우리는 참된 신앙인이 되는 것입니다.

일곱 번째는 ‘다 이루었다!(요한19,30)’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상의 죽음은 누구의 책임이겠습니까? 일차적으로는 예수님을 배반한 제자와 예수님을 십자가형에 처하라고 한 유대인들에게 있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라고 명령한 빌라도에게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고난의 길을 가신 것은 예수님 스스로의 선택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능동적으로 자신의 길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미리 고난의 길, 십자가의 길을 가야할 것임을 예고 하셨습니다. ‘아무도 내 목숨을 빼앗아 가지 못한다. 내가 스스로 내어 놓을 것이다.(요한10,18)’ 우리의 신앙생활도 그렇습니다. 나의 양심과 나의 자유는 누가 침해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선택이고, 나의 자유입니다. 내가 능동적으로 고난에 동참하고, 이겨낼 때 우리는 하느님의 구원사업에 함께 하는 것입니다. 악의 세력은 우리가 잘 아는 방법으로 우리를 유혹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위에서 하신 말씀을 묵상하면서 우리를 영적으로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댓글 1

  • 2010년 3월 18일 오전 11:00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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