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며칠 전에 이런 글을 읽었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저에게도 그런 모습이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글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어느 마을에 글을 아주 잘 쓰는 사람이 살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글을 잘 쓰는 사람에게 글을 부탁하곤 하였습니다. 어느 날 마을 사람 중에 한 사람이 장모님이 돌아가셨습니다. 그 사람은 글을 잘 쓰는 사람에게 돌아가신 장모님을 위한 글을 부탁하였습니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알겠다고 하면서 글을 써 주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글을 받아보니 글은 장인을 위한 글이었습니다. 글을 부탁한 사람이 돌아가신 분은 장모님이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아마, 장모님께서 잘못 돌아가셨을 거예요. 돌아가신 분은 장인이 맞습니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자신이 글을 잘 쓰기 때문에 장모님이 아니라 장인이 돌아가셨을 거라 생각을 한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우리의 선입견과 교만 때문에 진실을 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자존심 때문에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제는 봉성체를 다녀왔습니다. 지난달에 세례를 받으신 형제님 한분이 몸이 아프셔서 병원에 입원해 있었습니다. 어제 병원에 찾아가서 봉성체를 해 드렸습니다. 형제님께서는 말씀을 못하시기 때문에 저와 ‘필담’으로 대화를 하셨습니다. 형제님께서는 세례를 받기 전에 이미 성서를 모두 읽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천주교회와 예수님에 대해서도 공부를 많이 하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때는 천주교를 비난하고 공격하기 위해서 공부를 하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바오로 사도처럼 넘어지고 나서야 참된 신앙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고 말을 하였습니다. 자신이 공격하고 비난했던 예수님께서 지금 자신을 기다려주시고, 자신을 사랑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제 그분에게 신앙은 모든 것을 상실하고 있는 자신에게 유일한 희망이 되었노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비록 몸은 아파서 병원에 있어야 하지만 그분은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을 알게 되었다고 감사하며 지내고 있었습니다. 만일에 그분께서 갑자기 찾아온 아픔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원망하면서 지냈다면 본인과 가족에게 더욱 커다란 고통이 되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예레미야 예언자는 조롱과 멸시를 당했습니다. 예레미야 예언자는 이렇게 탄식을 합니다. “가까운 친구들마저 모두, 제가 쓰러지기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가 속아 넘어가고 우리가 그보다 우세하여, 그에게 복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느님을 따르는 일이 세상의 눈으로 볼 때, 불편하기도 하고, 어렵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거름이 되기보다는, 어둠 속에서 양분을 찾아 올리는 뿌리가 되기보다는 화려한 꽃이 되기를 더 바라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도 유대인들에게 배척을 당했습니다. 그분의 가르침을 따르기가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첫째가 되기 위해서는 꼴찌가 되라는 말, 회당에 앉을 때는 가장 낮은 자리에 앉으라는 말,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말, 나를 따르려거든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는 말, 사람의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는 말, 밀알 한 알은 땅에 떨어져 죽어야 비로소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말’ 그분이 하신 말씀들은 현실의 삶에서는 실천하기가 무척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그렇기 때문에 그분께 돌을 던지려 했던 것입니다.
사순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편견과 오만 그리고 교만과 이기심을 버려야 합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우리는 참된 진리를 만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