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수난 예절(성금요일)

2010. 4. 2. 오전 9:08:57

글자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어제 박 신부님께서 주님의 유언을 말씀하시면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드린 예수님처럼 발을 씻겨드리기 위해 세족례를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어제 구역장님들의 발을 씻겨 드리는데 허리가 아프더라구요. 엄마들이 아이들을 씻겨 주실 때 정말 힘드셨을 거란 생각을 처음 해보았습니다. 구역장님들의 발은 모두 깨끗하신 것이 미리 한번 씻고 오신 것으로 착각할 정도였습니다. 주님을 따른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어제 성유축성미사 후에, 사제생활 60년과 50년을 하신 신부님들을 위한 축하식이 있었습니다. 사제생활 25년은 ‘은경축’, 50년은 ‘금경축’이라고 부릅니다. 제가 50주년 사제서품 기념을 하려면 아직 31년이 남았습니다. 오랫동안 사제로 살아오신 신부님을 생각하면서 사제직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잠시 묵상하였습니다. 신부님들께서는 사제직에 대해서 한 말씀씩 해 주셨습니다.

예전에 교수신부님께 들었던 사제의 직무를 생각합니다.
사제의 직무는 ‘봉사직’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길이 바로 봉사의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신자들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죽기까지, 십자가에 달려서 죽기까지 하느님을 위해, 우리들을 위해 봉사하셨던 예수 그리스도처럼 살아야 한다고 말을 하였습니다. 신부님께서는 50년 사제생활을 하시면서 신자들을 위해 희생과 봉사를 하셨다고 하셨습니다. 건물 꼭대기에 달려있는 피뢰침이 온 몸으로 하늘의 번개를 받아들이듯이, 사제는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온 몸으로 받아 안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어제 주님 만찬미사에서 ‘세족례’를 하였듯이, 사제들의 삶은 이웃을 위해 희생 봉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신앙인들의 삶도 그와 같아야 합니다.

사제의 직무는 ‘예언직’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 사제의 직무라고 하였습니다. 강론을 잘 준비하고, 강론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제의 모습이 진정한 예언직의 선포라고 하였습니다. 강론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야 하고, 강론은 기도 중에 준비해야 하고, 강론은 시대의 흐름을 읽을 줄 알아야 하고, 강론은 진실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의 삶 또한 하느님 말씀의 선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제의 직무는 ‘제사직’이라고 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제정하신 7성사를 성실하게 집전하는 것이 사제의 직무라고 하였습니다. 미사를 성실하게 준비하고, 고백성사를 기쁜 마음으로 드리고, 지역의 아픈 사람을 찾아가는 병자성사를 자주해 드리고, 하느님 앞에 혼인의 계약을 맺는 혼인성사의 충실한 증인이 되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 하느님의 백성이 되려는 사람들에게 교리를 열심히 가르치고, 세례와 견진성사를 통해서 하느님의 자녀들이 신앙의 기쁨과 진리를 알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 사제의 직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신앙인들도 교회의 성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저는 사제서품 50주년과 60주년을 맞이하시는 신부님들을 보면서 저의 사제 직무를 생각하였습니다. ‘봉사직, 예언직, 제사직’이 바로 평신도가 바라는 사제상이며,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사제상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오늘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 언덕을 올라, 목숨을 바쳐서 하느님의 뜻을 따르셨던 예수님께서 걸어가셨던 사제상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가 천벌을 받는 줄로만 알았고, 하느님께 매를 맞아 학대받는 줄로만 여겼다. 그러나 그를 찌른 것은 우리의 반역죄요, 그를 으스러뜨린 것은 우리의 악행이었다. 그는 몸에 채찍을 맞음으로 우리를 성하게 해 주었고, 그 몸에 상처를 입음으로 우리의 병을 고쳐주었다.” 오늘 제 1독서에서 읽은 이사야 예언자의 말입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들려주는 말씀처럼 생생하고 가슴을 절이게 하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께서 고난의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타 언덕을 올라 십자가에 매달리시어 숨을 거두신 ‘성 금요일’ 예식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어제 저는 가장 뜻 깊고, 가장 소중한 삶의 한 순간들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우리들 생의 한 가운데서 가장 부끄럽고, 가슴 아팠던 순간들을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어떤 분은 친구를 배반했던 일을 떠올릴지 모릅니다.
어떤 분은 부모님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주었던 일을 떠올릴지 모릅니다.
어떤 분은 자신의 지위와 힘을 이용해서 약한 이를 괴롭히고 짓밟은 일을 떠올릴지 모릅니다.
어떤 분은 다른 이에게 자신의 잘못을 전가했던 일을 떠올릴지 모릅니다.
어떤 분은 남편밖에 모르는 아내 모르게 다른 여인에게 눈길을 주었던 일을 떠올릴지 모릅니다.

조용히 눈을 감고 지난날들의 기억 중에서 꼭 용서를 청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무엇이 있는지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저 역시도 짧은 사제의 길을 걸으면서 동료사제와 함께 살던 수도자와 더불어 사는 교우들에게 말과 행동으로 많은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오늘 성금요일 전례를 함께 하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모른다고 이야기하면서 통한의 눈물을 흘리는 베드로를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팔아넘긴 가리웃 사람 유다를 생각합니다. 나는 또다시 그 옛날 베드로처럼 유다처럼 예수님을 모른다고, 아니 예수님을 팔아넘기지는 않았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오늘 주님의 수난과 십자가상의 죽음을 생각하며, 우리가 또 다시 주님께 모욕을 드리고, 조롱을 하는 삶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갔던 키레네 사람 시몬처럼, 주님의 얼굴을 닦아 드렸던 베로니카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신앙인의 길을 충실하게 걸어가면서 십자가 경배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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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 2010년 4월 2일 오후 12:02

    너희가 나를 찾는다면, 이 사람들은 가게 내버려 두어라.아멘!

  • 2010년 4월 3일 오전 7:34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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