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교회에는 ‘엠마오’라는 전통이 있습니다. 부활절이 지난 다음 본당 사제, 수녀님, 사무실 직원들이 2박 3일 정도 여행을 가는 것입니다. 본당 신부님께서 부활절을 지내면서 수고하신 분들과 함께 휴식을 취하러 가는 것입니다. 엠마오로 가는 길에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고, 그분과 함께 지내면서 벅찬 감동을 느꼈던 것을 생각하며 여행을 가는 것입니다. 성서적인, 신학적인 근거가 별로 없기 때문에 교구에서는 본당을 비우고 ‘엠마오’라는 명목으로 여행을 가는 것을 자제해 줄 것을 당부하기도 했습니다. ‘엠마오’를 가려거든 부활 8일 축제를 지낸 다음에 가면 좋겠다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엠마오’라는 동네를 향해서 길을 떠났습니다. 가는 길에 제자들은 예수님을 만났고,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경과 예언자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제자들은 날이 저물자 예수님께 함께 머물다 가기를 청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빵을 떼어 나누어 드셨습니다. 그제야 제자들은 길에서 만났던 분이 부활하신 예수님임을 알아본다는 이야기입니다. 한편의 그림을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지는 이야기입니다. 이제 제자들에게 엠마오는 별로 중요한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곧바로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베드로 사도는 자선을 청하는 이에게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나는 은도, 금도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진 것을 당신에게 주겠습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합니다. 일어나 걸으시오.” 모태에서부터 불구자였던 사람은 발목에 힘이 생겼고, 튼튼해져서 펄쩍 펄쩍 뛰기도 하고 걸었다고 성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불구자였던 사람이 걷게 된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사람을 보고 ‘경탄하고 경악’하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이야기의 다른 부분을 생각하고 싶습니다. 베드로는 이제 예수님을 배반하고, 통회의 눈물을 흘렸던 나약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두려움과 근심 때문에 떨면서 방문을 걸어 잠그고 숨어있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비록 금과 은이 없어도 이제 세상 그 무엇보다도 귀중한 분을 알게 된 것입니다.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분을 알게 된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잠긴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걱정과 근심도 버렸습니다. 박해와 시련도 이제 더 이상 걸림돌이 되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오늘 제1독서에서 우리가 봐야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치유와 기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할 때 얻어지는 부수적인 결과입니다. 치유와 기적이 신앙의 본질은 아닌 것입니다.
엠마오는 단순히 부활절을 지내고 나서 며칠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엠마오는 우리 인생길에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추구했던 것들이 이제 더 이상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엠마오로 간 제자들이 즉시 일어나 부활의 땅, 구원의 땅, 십자가의 땅인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것처럼, 우리가 낡은 굴레를 벗어버리고 주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엠마오입니다.
세상은 1등만을 기억하고, 결과만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신앙은 등수를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결과로 판단하고 측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늘 절대평가이이 때문입니다. 신앙은 다른 이와의 경쟁이 아닙니다. 신앙은 치유와 기적으로 순위가 정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신앙은 이제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새로운 것을 볼 수 있으며 그때 보는 것은 예전에 보던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