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창 신부님 사순특강 요약

2009. 3. 21. 오전 9:54:12

글자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산에는 진달래가 피었다고 합니다. 저도 어제 길에 핀 개나리를 보았습니다. 겨울이 긴 것 같아도, 봄은 이렇게 우리에게 왔습니다. 어제는 유 인창 신부님께서 ‘어둠 속에 희망의 빛을’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해 주셨습니다. 18세기 19세기에 인류는 산업화를 통하여 많은 진보를 이루었습니다. 인류의 이성이 발전하고 과학 기술이 진보하여 더 이상 하느님을 의지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지만 인류는 여전히 서로를 죽이고, 양심을 속이며, 하느님의 도움이 없이는 살기 힘든 존재라고 말을 하였습니다.

2차 세계 대전에서 인류는 같은 인간에게 너무나 잔인한 행동을 자행하였습니다. ‘홀로코스트’라고 불리는 유대인들에 대한 학살,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잔인한 생체실험, 단순히 더 많은 영토를 차지하려고 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살육 등을 보면 인류는 몸은 성장하였지만 정신은 발육이 멈추어버린 아이와 같다고 합니다.

한국사회에도 사람들의 욕심 때문에 벌어졌던 많은 사건과 사고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서해의 페리 전복사고는 200명 정원에 400명 이상을 승선시킨 인재였고, 대구 지하철 가스 폭발사고,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등도 역시 안전에 대한 불감증이 일으킨 사고였습니다. 엄청난 규모의 사기사건은 사람을 직접 죽이지는 않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을 거리로 내모는 비극이었습니다. 유 영철, 강 호순과 같은 잔혹한 살인도 자연으로부터 온 재해가 아니라, 오직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벌어진 비극이라고 말을 합니다. ‘악이란 내가 느끼고, 남이 느끼는 것에 대한 결핍’이라고 말을 합니다. ‘나는 배불리 먹으면서 지금 굶주림에 허덕이는 사람의 고통을 함께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것이 악이라고 말을 합니다.

이렇게 어둠이 강하고, 악이 만연한 세상이지만 그래도 희망이 있는 것은 악한 사람들이 많은 중에 소수의 사람이지만 희망의 씨앗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우리 나라사람들은 사람은 착하고 선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 할 때, 사람들은 지체 없이 구하려 하듯이, 지금은 민둥산이지만 원래부터 그런 것은 아니고 예전에는 울창한 숲이었듯이 원래 사람들은 선하고 착하다고 합니다. 다만 악한 기운들이 많아져서 선한 모습을 가렸기 때문이라고 말을 합니다.

세상을 보면 아주 소수의 사람들일지라도 희망을 주고 기쁨을 주는 것을 봅니다. 꽃동네의 오 웅진 신부님과 최 기동 할아버지는 단지 두 사람이었지만 수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희망을 주었고, 지치고 힘든 사람, 얻어먹을 힘조차 없던 사람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랑의 보금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사람을 죽이는데 여러 사람이 필요했지만 사람을 살리는 것은 한 사람만 있어도 된다고 합니다. 김수환 추기경님께서도 한분이셨지만 그분은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과 기억 속에 희망을 주고 가셨습니다. 법정 스님은 ‘굳이 하느님을 말하지 않아도 하느님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신 분을 이제 세상에서 볼 수 없는 것’이 슬프다고 하면서 김수환 추기경님의 죽음을 애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명동 성당을 가득 메운 추모인파를 보며 한 사람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빛을 주고 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하셨듯이 많은 사람들이 장기 기증을 신청하였다고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나의 몸을 이웃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 희망의 싹이 그만큼 더 많이 자라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희망이란 무엇입니까?
첫째, 희망은 신앙과 같은 말입니다. 우리는 주변에서 거짓 희망을 보게 됩니다. 물가가 안정되고, 경제가 좋아지고, 국민 소득이 늘어날 것이라고 하는 말들은 진정한 희망이 아닙니다. 참된 희망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희망은 기도와 실천을 통해서 자라나는 것입니다. 언젠가 하느님께서 선하고 착한 사람들은 거두어 주신다는 확신을 통해서 현실의 아픔과 고통까지도 이겨내는 것이 참된 희망입니다. 다시 말해서 희망은 신앙과 같은 말이라고 하겠습니다.

둘째, 희망은 언제나 현재 진행형입니다. 부활에 대한 희망과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많은 박해와 고통을 참고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배가 항해할 수 있는 것은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살이 빠지면 건강하고 행복한 것이 아니라, 건강하면 살이 빠지고 행복해 진다고 말을 합니다. 생활이 안정되면 기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면 생활도 안정될 수 있다고 말을 합니다. 행동 없는 희망은 진정한 희망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셋째, 희망은 ‘공동체’와 함께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예전에 시인 박노해 씨는 ‘사람만이 희망이다.’라는 시를 썼습니다.

“희망찬 사람은
그 자신이 희망이다.
길을 찾는 사람은
그 자신이 새 길이다.
참 좋은 사람은
그 자신이 이미 좋은 세상이다.
사람 속에 들어있다.
사람에서 시작된다.
다시
사람만이 희망이다.”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가셨던 예수님을 봅니다. 묵묵히 그분의 십자가를 지고 갔던 시몬을 봅니다. 예수님 얼굴에 흐르던 피와 땀을 닦아 드리던 베로니카를 봅니다. 십자가에 매달려 ‘주님 저를 기억해 주세요.’라고 했던 죄인을 봅니다. 희망은 함께 할 때 현실이 되고, 함께 할 때 비로소 이루어집니다.

댓글 3

  • 2009년 3월 21일 오전 10:18

    생활이 안정되면 기도할수있는것이 아니라.기도하면 생활이 안정되는것입니다.아멘!

  • 2009년 3월 21일 오후 1:28

    아멘.

  • 2009년 3월 21일 오후 3:30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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