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희 성당 위로 매일 지나다니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비행기입니다. 어떤 것들은 선명하게 항공사의 표시를 볼 수도 있습니다. 비행기들은 사람들을 싫고 어딘가를 출발해서 한국으로 왔습니다. 또 한국을 출발한 비행기들은 어딘가의 목적지를 향해서 날아갈 것입니다. 하느님께로부터 왔던 우리들은 언젠가 이 세상의 여행을 마치고,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가야 하는 존재입니다.
지난 목요일 새벽에 이 상구 베드로 할아버지께서 하느님 품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작년 11월 쯤 여의도 성모병원에서 병자성사를 받고, 투병 중에 돌아가셨습니다. 지난주일 고인을 위해 병자성사를 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본당의 많은 교우분들이 고인을 위해 연도를 해 주셨고, 오늘 장례미사에도 함께 하고 계십니다. 고인의 가족을 대신해서 감사를 드립니다.
죽음을 앞두고, 사람들은 5가지의 반응을 보인다고 합니다.
첫 번째는 부정입니다. 왜 내가 죽어야 하는지, 나는 아직 죽을 때가 아니라고 강하게 부정을 합니다.
두 번째는 분노입니다. 이렇게 죽어야하는 것에 대해서, 하느님과 이웃, 가족들에게 화를 내곤 합니다. 이렇게 병들어 죽게 되는 것에 대해서 원망과 미움이 생기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타협입니다. 내가 다시 살아난다면, 다시 건강해 진다면 더욱 기쁘고 즐겁게 살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네 번째는 절망입니다.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상황 앞에 무기력해지는 것입니다. 아직 남아 있는 날들조차 아무런 희망이 없이 나약해지는 모습으로 지내게 됩니다.
다섯 번째는 수용입니다. 죽음이 단순히 끝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습니다. 그동안의 삶에 대해서 감사합니다. 이제 편안하게 주어진 것들을 받아들입니다.
죽음을 체험했던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이렇게 말을 합니다.
첫째, 그들은 한결같이 더 이상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말을 합니다.
둘째, 그들은 이제 죽음이란 필요 없어진 옷을 벗는 것처럼 육체를 떠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셋째, 그들은 죽음 속에서 온전한 자신을 느꼈고, 자신이 모든 사물, 모든 존재와 연결되어 있음을 느꼈다고 합니다. 더불어 어떤 상실감도 느끼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들은 절대 외롭지 않았으며 누군가가 자신과 함께 있음을 느꼈다고 합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죽음은 영원한 생명에로 들어가는 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넘어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들 모두는 하느님을 믿고 찬미하여 죽음을 넘어 영원한 생명에로 나갈 것을 믿습니다. 이상구 베드로 할아버지께서는 하느님의 종으로서 충실하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가셨습니다. 그러기에 이제 하느님과 함께 영원한 삶을 살아가리라고 믿습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우리들입니다.
베드로 할아버지의 죽음을 보면서, 부정하거나, 분노할 필요는 없습니다. 타협하거나 절망할 필요도 없습니다. 달릴 길을 다 달리고, 주님의 품으로 가신 할아버지처럼 우리들도 주어진 삶에 충실해야 합니다.
우리를 하느님께 이끌어 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힘과 권위, 명예와 지식은 우리를 하느님께로 이끌어 줄 수 없다고 말을 합니다. 권위의 탑을 쌓아서는 하느님께 갈 수 없습니다. 명예의 탑으로는 갈 수 없는 곳이 하느님 나라입니다. 과학과 지식으로 우주선을 쏘아 올려서 도착할 수 있는 곳도 아닙니다. 교만함은 우리를 하느님과 멀어지게 하는 가장 커다란 유혹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진정 하느님과 함께 할 수 있는 길을 보여 주십니다. 바로 가난한 이들, 굶주린 이들, 헐벗은 이들, 병든 이들과 함께 더불어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느님께로 나가는 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아울러 겸손하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합니다. 이제 우리들도 주어진 십자가를 충실하게 지고 가야합니다. 커다란 상실의 아픔이 있지만 그것에 절망하고 분노하기 보다는 이제 우리 모두는 언젠가 하느님께로 가야하는 존재임을 받아들이고 참된 신앙의 길을 묵묵히 걸어야 하겠습니다.
주님!
이상구 베드로 할아버지와 죽은 모든 교우들의 영혼이 하느님의 품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