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처음 실시하는 가족 미사입니다. 교구장님의 사목 방침은 ‘가정의 성화’입니다. 저는 교구장님의 사목 방침이 본당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가정 분과를 신설하였습니다. 가정 분과는 주일 교중 미사에 ‘유아 돌보기’를 하고 있으며, 본당의 엘리베이터와 화장실에 성서말씀을 게시하고 있습니다. 매월 분과 모임을 통해서 가정의 성화를 위한 여러 방안들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오늘 실시하는 가족미사도 본당의 가정 분과에서 준비를 하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매월 마지막 토요일에 실시하는 가족미사에 많은 교우분들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가족미사이기 때문에 저의 가정 이야기를 잠깐 하겠습니다.
저는 5대째 천주교를 믿는 구교 집안에 태어났습니다. 3남 1녀 중에 3남으로 태어났고 동생은 여동생이 있습니다. 천주교를 믿는 집안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했지만 저는 늘 불만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무능하게 느껴졌습니다. 아버지는 직업이 없으셨고 돈을 벌어 오신 적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아버지는 늘 저에게 커다란 산처럼 느껴졌습니다. 어머니는 무식하게 느껴졌습니다. 일제시대와 6.25를 거치면서 어머니는 교육을 거의 받지 못하셨습니다. 한글도 잘 모르셨고, 아버지께는 꼼짝 못하시지만 저에게는 엄하셨습니다. 형들과 동생은 못나게 느껴졌습니다. 공부를 잘 못하였습니다. 저도 잘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중간 이상은 했는데 형들과 동생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가난’이 참 싫었습니다. 학비도 못 내고, 책도 못 사고, 굶기도 하고, 쌀 배달, 연탄 배달, 밥장사, 신문 배달하면서 지내는 것이 싫었습니다. 주인 집 아들과 싸울 때 나만 일방적으로 혼나는 것도 싫었습니다.
그런 저는 신학교엘 들어갔습니다.
신학교는 너무 좋았습니다. 진리를 배우고, 하느님을 좀 더 잘 알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맛있는 밥과 반찬이 좋았습니다. 화장실도 수세식이라 좋았습니다. 내 책상이 있는 것도 좋았습니다. 저는 이제 집은 잊고 공부하고 드디어 사제 서품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사제 서품 받은 지 보름 만에 유행성 출혈열로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죽게 될지도 모른 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추기경님, 주교님이 오셔서 기도를 해 주셨습니다.
병원에 보름 입원해 있으면서 저는 병세가 조금씩 좋아졌습니다. 많은 분들의 기도와 의사 선생님의 치료와 좋은 약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때 저는 어머니를 보았습니다. 단 한 시간도 제 곁을 떠나지 않으시면서 저를 간호하셨습니다. 피를 토하면 피를 다 닦아 주셨습니다. 음식을 토해도 그것을 다 치우셨습니다. 머리에는 늘 찬 수건을 올려 주시고 제 온 몸을 주물러 주셨습니다.
저는 지금도 생각합니다. 제가 이렇게 건강하게 다시 다닐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 어머니의 지극한 정성과 기도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더 이상 무식한 분이 아니었습니다. 어머닌 저 몰래 야학을 다니셨고 검정고시도 보셨습니다. 신학은 제가 조금 더 알지 몰라도 사랑은 감히 제가 따라 갈 수 없는 분이셨습니다.
아버지 이야기도 집안 어른들께 들었습니다. 6.25때 아버지는 좌익이었다고 합니다. 전쟁이 끝나고 아버지는 사형선고를 받았는데 아버지께서 천주교 신자이기 때문에 신부님과 수녀님을 살려 주셨고 나중에 신부님께서 그 사실을 이야기 하셔서 풀려나셨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물질적인 풍요함을 주시지는 않았지만 세상의 명예를 주지는 않았지만 정직함과 강직함을 몸소 보여 주셨습니다.
공부를 못한다고 생각했던 형님은 저보다 훨씬 부모님을 사랑하시고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니다. 동생도 수녀님이 되어 수도자의 길을 가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잘나고, 제가 능력이 있어서 지금 이 자리에 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저는 부모님의 희생과 부모님의 정성을 먹고 자랐습니다. 저는 형제들의 배려와 사랑의 텃밭에서 자랄 수 있었습니다. 제가 의지하고 제가 기대며 함께 손을 잡고 가야 하는 가장 소중한 것은 바로 가족이었습니다.
어머니와 아내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느낀 점이 있었습니다. 그 글의 내용을 조금 읽어 드리겠습니다. 어머니는 거의 모든 물건을 살 때 시장으로 가고 싶어 하고, 아내는 거의 모든 물건을 살 때 백화점으로 가고 싶어 한다. 어머니는 파 한 단을 살 때 뿌리에서 흙이 뚝뚝 떨어지는 파를 사고, 아내는 말끔하고 예쁘게 다듬어 놓은 파를 산다. 어머니는 고등어 대가리를 비닐봉지에 함께 넣어 오지만, 아내는 생선가게에다 버리고 온다. 어머니는 손자들의 옷을 고를 때 소매가 넉넉한 것을 사려고 하고, 아내는 아이의 몸에 꼭 들어맞는 옷을 사려고 한다. 어머니는 내일 입힐 것을 생각하지만, 아내는 오늘 입힐 것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끔 어렸을 때의 일을 떠올려 봅니다. 어머니는 밥상을 차릴 때 아버지의 수저를 제일 먼저 올려놓으셨습니다. 그것도 아주 정갈스럽고 조심스럽게. 밥도 제일 먼저 푸셨고 반찬도 아버지 가까이에 맛난 것을 놓으셨습니다. 밥상에 둘러앉아서도 아버지가 수저를 드실 때까지 식구들이 기다렸음은 물론입니다.
가끔 늦게 들어오시게 되면 아랫목 따뜻한 자리는 아버지의 진지그릇차지였고 아버지의 옷은 구겨지지 않게 잘 걸어놓으시고 그 위에 다른 옷을 걸어 놓으시는 일이 없으셨습니다. 늦게 귀가하신 아버지는 애들은 밥을 먹었는지 물으시고 밥을 먹었다 해도 맛있는 반찬을 남겨 주셨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발을 씻으실 수 있도록 따뜻한 물을 대야에 담으시고, 수건을 준비해서 들고 계셨습니다. 그럼 전 다 씻으신 그 대야를 들고 나갔습니다.
이제 어른이 되어 생각해봅니다. 그때 우리 아버지의 자리는 어머니가 마련해 주셨음을 그런데 지금 우리 아버지의 자리는 누가 만들어주나요? 아이들은 세상 물정 모르면 가만이나 있으라고 합니다. 또 아내는 낳아주고 길러주신 어머니에 대한 불만을 퍼부어냅니다. 이럴 때 부모에 대한 효도, 아내와 자식에 대한 사랑은 차라리 내팽개치고 싶은 무거운 짐이 되고 맙니다. 더욱이 현대의 광고는 아내와 아이들이 바라는 것을 재치 있게 해주어야 멋쟁이, 아빠, 신세대 가장이 되는 것처럼 몰고 갑니다.
이런 아버지들에게 가족들이 따뜻한 자리를 마련해주어야 하겠습니다. 이 아버지들이 가족을 위해 그동안 흘린 땀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네가 세상에 태어난 것은 부모님의 덕택임을 잊지 말아라. 그들의 은덕을 네가 어떻게 무엇으로 갚을 수 있겠느냐?"(집회 7,28)
앞으로 가족미사를 통하여, 본당의 많은 교우들이 가족의 소중함을 더욱 깊이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가족미사를 준비해 주신 가정 분과 위원장님과 위원님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바쁜 중에도 악기연주를 위해 수고해 주신 음악 봉사자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