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지난 3일 동안 ‘성지순례’를 다녀왔습니다. 성지라는 말은 2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살았던 이스라엘을 의미할 때의 성지는 ‘Holy Land'라고 합니다. 복음이 전파되면서 예수님을 증거하다가 순교한 사람들이 묻힌 곳,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면서 기적이 일어난 곳, 성인품에 오른 분들이 살았던 곳을 의미할 때의 성지는 ’Holy Place'라고 합니다. 신앙인들이 성지순례를 가는 의미는 우리들 안에 있는 ‘하느님의 모상’을 회복하려는 뜻입니다. 우리는 현실의 삶을 살아가면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지 못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옛 그리스의 철인이었던 플라톤은 그가 남긴 '향연'이라는 작품 속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원래 사람은 남자와 여자가 합쳐진 하나의 몸이었다. 그런데 이 합쳐진 몸은 무서운 힘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신들을 공격하곤 하였다. 이에 제우스는 인간을 그대로 생존케 하면서도 그 힘을 약하게 하기 위하여 사람을 두 동강이로 쪼개었다. 그래서 몸이 갈라진 후부터 반쪽은 떨어져 나간 다른 반쪽을 그리워하고 다시 한 몸이 되려는 열망을 지니고 있다." 플라톤은 이러한 열정을 '사랑' 혹은 '에로스'라고 명명하였습니다. 굳이 플라톤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남자는 하느님에 의해서 진흙으로 빚어졌고 여자는 남자의 갈빗대를 뽑아서 만든 존재입니다. 그리하여 남자가 자기 아내와 결합하는 것을 '둘이 한 몸이 되는 것'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예전에 감동적인 신문 기사를 읽었던 적이 있습니다. 한 여인이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남편을 6년 동안이나 간병해서 의식을 되살려낸 것입니다. 이 여인은 의사들도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포기한 남편을 기적적으로 소생시켰습니다. 그녀는 항상 "그는 환자가 아니다. 내 남편이다. "라고 스스로 다짐하였으며 하루에도 수십 차례 의식 없는 남편과 대화를 나눴다고 합니다.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남편을 아기처럼 껴안고 뽀뽀도 하였으며 남편이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웠다고 했습니다. 도저히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이 그 남편은 6년 만에 부활하여 첫마디를 "아멘"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성정식(成貞植)이란 여인의 이 아름다운 이야기는 우리들의 남편을, 아내들을 부끄럽게 만듭니다. 우리도 분명히 결혼식에서 '비가 오나 바람 부나 괴로울 때나 슬플 때나 병들었을 때나 늙었을 때나 항상 사랑할 것을 맹세'한 신랑 신부였습니다.
본당에서, 매월 마지막 금요일에 ‘봉성체’를 합니다. 17년 동안 자리에 누워계신 남편을 돌보는 할머니도 있습니다. 4년 전에 쓰러진 아내를 돌보는 남편도 있습니다. 할머니의 말씀이 제 마음에 남았습니다. ‘이렇게 자리에 있어도 좀 더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제1독서는 남자와 여자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 위로 깊은 잠이 쏟아지게 하시어 그를 잠들게 하신 다음, 그의 갈빗대 하나를 빼내시고 그 자리를 살로 메우셨다. 주 하느님께서 사람에게서 빼내신 갈빗대로 여자를 지으시고, 그를 사람에게 데려오시자, 사람이 이렇게 부르짖었다. ‘이야말로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 불리리라.’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된다.
오늘 성서의 말씀은 남자와 여자만의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께로부터 왔으며, 하느님께로 돌아가야 하는 존재입니다. 피부색이 달라도, 언어가 달라도, 문화가 달라도 우리들의 시작은 하느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하고, 서로 이해하여야 하며, 서로 도와주어야 합니다. 오늘의 복음은 바로 그런 점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이방인 여인의 청을 들었습니다. 이방인 여인의 딸에 대한 사랑을 보셨고, 하느님께 대한 갈망을 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인의 딸을 치유시켜 주셨습니다.
성지순례 중에 성당을 찾아가서 미사를 함께 봉헌했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고, 말도 통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하느님을 믿는 같은 신앙인이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알았던 친밀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곳의 신자들과 수녀님께서 우리가 미사를 봉헌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셨습니다. 하느님 안에 우리는 가족이라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신앙의 이름으로 우리는 모두 가족이 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