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4주간 수요일

2009. 2. 4. 오전 8:54:21

글자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입춘입니다. 봄이 온다는 뜻처럼 오늘 하루 날씨도 따뜻할 거라고 합니다. 도연명은 歸去來辭에서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이미 지난 일은 돌이킬 수 없고, 앞으로 다가올 일은 추구할 수 있음을 알았노라. 사실 길을 잘못 들기는 했으나 아직 멀리 벗어나지는 않았고, 지금이 옳고 예전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농부가 내게 봄이 왔다고 알려주니, 장차 서쪽 밭에 할 일이 생기겠구나! 부귀는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요, 천국은 기약할 수는 없는 것이거늘. 주어진 천명을 즐길 뿐 다시 무얼 의심하랴!” 계절은 이렇게 다시 바뀌고 세상의 모든 것들은 봄을 맞을 준비를 합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하느님께로부터 왔으니 하느님께 돌아가야 함을 늘 잊지 말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작년 11월에 교구에서 ‘재무감사’를 했습니다. 몇 가지 지적사항이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본당의 재정은 잘 운영되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서서울 지역 교구장 대리이신 주교님께서 ‘사목방문’을 오신적도 있습니다. 주교님께서도 청소년 사목에 대해서 조언을 해 주셨지만 제게 격려와 용기의 말씀을 많이 해 주셨습니다. 신자 분들 중에서 저에게 조언을 해 주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세세한 것까지 마음을 써 주시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저도 제가 100점짜리 사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좋은 것들은 더 발전시키고 부족한 것들은 보완하면서 지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바람과 해님’의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사나운 바람은 나그네의 옷을 벗기지 못했지만 따뜻한 햇볕은 나그네 스스로 옷을 벗게 했다는 동화입니다. 어릴 때, 이 동화를 읽으면서 감동을 했고, 늘 이 동화는 제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건전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공정한 감시와 비판이 있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방송과 언론’은 사회적 약자를 위한 배려를 해야 하고, 정부의 잘못된 정책 수행에 대해서도 엄격하게 비판을 해야 합니다. 이와 같은 감시와 비판의 기능이 약해지면 당장의 정책 수행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우리사회는 점점 병들게 되고 어디가 잘못되었는지도 모르는 사회가 될 수 있습니다.

비판과 비난은 비슷한 면이 있지만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순수이성 비판’이라는 책을 통해서 비판은 사상의 발전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라고 말을 했습니다. 비판은 공정하고 사심이 없는 가운데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가난하고, 약한 이들에 대한 배려를 생각합니다. 비난은 공동체를 분열시키고 사회 발전에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비난은 질투와 사적인 감정에서 시작합니다.

아합왕은 나봇의 포도밭은 빼앗았습니다. 엘리야 예언자는 아합왕의 잘못에 대해서 비판을 하였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전했고, 아합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칠 수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8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부정한 여인을 앞에 놓고 비난을 하였습니다. 모두 손에 돌을 들고, 유대인들의 법을 들어 돌로 쳐야 한다고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러분 중에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인에게 돌을 던지시오.’

오늘 우리는 비판과 비난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제1독서는 비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내 아들아, 주님의 훈육을 하찮게 여기지 말고, 그분께 책망을 받아도 낙심하지 마라.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이를 훈육하시고, 아들로 인정하시는 모든 이를 채찍질하신다. 여러분의 시련을 훈육으로 여겨 견디어 내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자녀로 대하십니다. 아버지에게서 훈육을 받지 않는 아들이 어디 있습니까?” 하느님의 말씀, 예언자들의 이야기를 충실하게 듣는 것은 우리를 참된 생명의 길로 인도할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오늘 복음은 비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 그의 손에서 저런 기적들이 일어나다니!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간이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우리와 함께 여기에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공정하고 올바른 비판은 받아들일 줄 아는 겸허함이 있어야 합니다. 질투와 사적인 감정에서 나오는 비난은 하지 않는 절제가 있어야 합니다. 심미숙 시인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흔들리니까 사랑이다. 그대여 아파하지 말아라. 흔들리니까 사랑이다. 온갖 비바람 순순히 허락한 들장미가 눈부시게 아름답듯, 사랑도 그러하리. 때론 굳은 약속도 깨지고 뜨거운 다짐도 비틀거리면서 잔잔한 사랑으로 여울지는 것. 갈대가 수만 번을 흔들리고도 섣불리 꺾이지 않듯 호수에 일렁이는 잔물결처럼 사랑도 쉼 없이 흔들려야 그 향기가 오래오래 고운 법. 그대여 애태우지 말아라. 가까이 하면 할수록 자꾸만 달아난 것이 사랑이다.”



 

 

 

 

댓글 3

  • 2009년 2월 4일 오전 10:49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것을 얻었을까?..아멘!

  • 2009년 2월 4일 오후 8:56

    여러분 중에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인에게 돌을 던지시오. 아멘!

  • 2009년 2월 4일 오후 9:08

    사랑의 주님 허물많은 나약한 존재, 당신앞에서 떨게 하소서.그러나 시람이 주는 상처앞에 아버지께 향하는 긴~ 여정의 길이 흔들리지 않게하소서..저를 보살펴 주시는 하느님을 보면서 믿음의 길을 가기때문입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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