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우리 노래 중에 ‘욕심 없는 마음’이 있습니다. 사월과 오월이 불렀습니다. “내가 사고 싶은 집은 작은 초가집 내가 먹고 싶은 것은 구운 옥수수 욕심 없는 나의 마음 탓하지 마라. 내가 입고 싶은 옷은 하얀 저고리 내가 갖고 싶은 책은 작은 성경책 욕심 없는 나의 마음 탓하지 마라.” 이런 순수한 마음으로 어제, 오늘 많은 사람들이 고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지난 화요일 새벽에 용산의 재개발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경찰의 강제 진압과정에서 화재가 발생했고, 작은 초가집도 없는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개발과 발전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런 개발과 발전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쫓겨나야 하는 세입자들, 영세민들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합니다. 아직 우리 사회에는 구운 옥수수도 먹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추운 겨울, 모두들 가족들을 만나는 ‘설’날에 거리에서 지내는 노숙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경제발전은 또 다른 사고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 나옹선사는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사랑도 벗어 놓고 미움도 벗어 놓고 물 같이 바람 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새해에는 물같이 바람같이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욕심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탐욕 때문에 자신을 속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피정 중에 선배 신부님이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영신수련이란 간단하다. 조건 없는 하느님의 사랑을 조건 없이 받아들여서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정말 간단한 말입니다. 하지만 이 말속에 참된 가르침이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사랑은 조건이 없습니다. 다만 자식이 잘되고, 건강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식은 부모에게 바라는 것이 많습니다. “컴퓨터도 사주었으면 하고, 옷도 좋은 것을 사주었으면 하고, 집도 더 좋은 집으로 이사를 했으면 하고, 맛있는 것도 많이 사주었으면 하고, 스키장도 데려가 주었으면 하고, 우리 부모님은 남달리 이해력이 많았으면 하고, 우리 부모님은 아프지 않다가 돌아가셨으면 하고, 아무튼 자식이 부모에게 바라는 것은 이루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저 역시도 어렸을 때 부모님에게 바라는 것이 참 많았습니다. 우리 집도 텔레비전이 있었으면, 우리 집도 정원이 넓은 집이었으면, 우리 집도 다른 가족처럼 서로 화목한 가정이었으면, 아버지가 일찍 들어오셔서 우리와 놀아 주었으면 하고 바랬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는 것은 하느님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모두 우리들이 참된 인생길을 살아가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원한 삶에로 나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두고 외도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가정의 일은 팽개치고 밖으로만 나도는 아내가 있다면, 신앙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냉담 하는 신자가 있다면, 삶의 의욕을 상실하고 매사에 신경질과 권태가 철철 넘치는 사람이 있다면, 주어진 시간을 헛되이 쓰는 사람이 있다면 그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살기만 바라십니다. 오직 하느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들 자신을 위한 요구라고 하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바라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때가 다되어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 왔다.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어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회개하고 내가 전하는 복음을 믿어라. 우리는 성서말씀에서 회개하고 복음을 믿은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니느웨의 백성들은 회개하여 하느님께로 향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악한 길에서 돌아서는 모습을 보셨고, 하느님께서는 마음을 돌리시어, 그들에게 내리겠다고 말씀하신 그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시몬과 안드레아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사람 낚는 어부가 되어 우리 교회의 초석이 되었고 교회 초창기를 시작한 신앙의 사도들이 되었습니다.
지난주간에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다. 안식일에 착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나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하시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배척하고 따르지 않는 반대세력에게 따끔한 가르침을 주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믿는 사람에게는 모든 어려움을 깨끗이 해결해 주십니다.
교우 여러분 신앙은 결단입니다. 이런 결단은 하느님을 위한 것이 아니고 오직 우리 자신을 위한 결단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우리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교우 여러분 명심하십시오. 우리가 보는 이 세상은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