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문득 ‘부른다.’라는 말을 생각합니다. 주교님께서 부르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주교님께서 차 한 잔 하자고 부르는 경우도 거의 없고, 쉬는 날 함께 여행가자고 부르는 경우도 거의 없습니다. 주교님께서 부르실 때는 중요한 일이 있을 때입니다. 저도 주교님께서 저를 개인적으로 3번 정도 부르신 적이 있습니다. 2번은 제게 칭찬을 하셨고, 격려를 해 주셨습니다. 한번은 제가 실수 한 것이 있는데 그것을 지적해 주셨습니다.
지금은 저도 사제 생활을 19년째 하고 있기 때문에 주교님께서 부르신다고 해도 예전처럼 많이 긴장하지는 않습니다. 요즘은 주교님께서 부르시는 이유를 대충은 알기 때문입니다. 인사이동을 할 때가 되면 주교님께서 부르셔서 의견을 묻는 경우가 있고, 최근에는 주로 인사이동 때문에 주교님을 만났습니다.
본당에서 사목을 하면서, 신자들을 개인적으로 만나야할 때가 있습니다. 면담을 요청하기도 하고, 제가 필요한 일이 있어서 전화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신자분들도 제가 전화를 드리면 약간은 긴장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신부님이 왜 나를 부를까?’ 궁금해 하기 마련입니다.
저도 신자분들을 부르는 경우 보통은 2가지 이유입니다. 단체에서 봉사할 봉사자를 찾을 때 부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지금 봉사하는 분이 못한다고 하실 때, 좀 더 봉사를 해 주시기를 부탁하는 경우입니다. 대부분의 신자분들은 저의 부탁을 들어 주십니다. 부득이하게 저의 부탁을 들어 주지 못하는 경우에도 미안한 마음을 이야기 하곤 합니다.
이런 경우는 거의 없는데, 가끔은 신자분들끼리 다툼이 있거나 오해가 있을 때 부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상황과 이유를 이야기 하면 이때도 오해가 풀리고, 순간의 감정 때문에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 미안한 마음을 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전에 제가 부르면 언제나 제게 와 주었던 분이 있었습니다. 공항에 갈 때가 있으면 운전 봉사를 해 주셨고, 선물을 사야 할 때도 필요한 물건들을 준비해서 와 주셨습니다. 늦은 밤, 술 한 잔 할 때도 오셔서 함께 해 주셨던 분입니다. 그때는 잘못 생각했습니다. 그분은 늘 시간이 많았고, 언제나 여유가 있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니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자기 사업을 하느라 무척 바쁘셨고, 가족들을 돌봐야 했으며, 사회적으로도 많은 만남을 가져야 하는 분이셨습니다. 그분께서 언제나 저와 함께 했던 것은 그분이 해야 할 많은 일들을 기꺼이 포기하셨기 때문입니다. 사제를 존경하고, 사제를 위해 봉사하는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래 전의 일이지만 지금 생각하면 정말 고마우신 분이셨습니다.
교우 여러분! 한 주간을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입니다. 내가 자주 가는 곳은 어디인가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나를 주로 불러 주는 분들은 누구인가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어떤 모임을 좋아하는지도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나를 기쁘게 하는 자리, 나에게 이익이 오는 자리, 나의 명예와 나의 자존심이 드러나는 자리, 편안하고 즐거운 자리만 찾아가는 것은 아닌지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조금은 불편하고, 손해 보는 것 같고, 남는 것이 없는 것 같지만 가치 있고, 소중하며, 참된 행복을 주는 그런 자리를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만남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과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제자들은 아무 이유 없이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을 하였습니다. 분명 광이 나는 자리는 아니었고, 물질적인 이익이 보장되는 자리도 아니었습니다. 그 길은 십자가의 길이었고, 그 길은 세상의 눈으로 보면 보잘 것 없는 길이었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합니다.
2009년의 1월도 많이 지났습니다. 내가 응답하는 자리는 어떤 자리여야 하는지, 최근에 내가 응답했던 자리는 어떤 자리였는지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