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요즘 신학생들은 ‘죄’에 대해서 묵상을 하고 있습니다. 사랑에 대해서 묵상 할 때와는 달리 죄에 대해서 묵상을 하면 걸음걸이도 더 무겁고, 식사도 적게 하는 것을 봅니다. 죄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죄의 종류와 죄의 상황들을 보기 보다는 죄의 뿌리를 볼 수 있도록 이야기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칠죄종’이라고 말을 합니다.
1) 교만 : 하느님을 도외시하고 자신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교만의 죄가 있습니다.
2) 인색 : 재물을 지나치게 중시할 때 그 사람은 재물의 노예가 됩니다. 재물은 사람을 위한 수단이지 그 자체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3) 미색 : 성적 쾌락의 무질서로부터 오는 죄입니다. 하느님의 창조질서에 따라 남녀의 관계는 평등하고 인격적이어야 합니다.
4) 분노 : 복수하고자 하는 무절제한 욕망이 분노로 나타납니다. 분노는 다른 사람을 해치거나 자기 자신을 해칠 수 있습니다.
5) 탐욕 : 과음이나 과식으로 건강을 해치는 경우를 말합니다.
6) 질투 : 남이 잘 되는 것을 싫어하는 감정입니다.
7) 나태 :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싫어하는 게으름을 뜻합니다.
이와 같은 죄의 뿌리를 통해서 많은 죄들이 생겨납니다.
성서를 보면 죄의 현장들이 잘 나타납니다.
아담이 뱀의 유혹을 받아 ‘선악과’를 먹은 일은 하느님과 같아지려는 교만함 때문이었습니다. 카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것은 동생에 대한 질투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이 우리야를 죽이고 바세바를 차지한 것은 미색 때문입니다. 아합이 나봇의 포도밭은 빼앗은 것은 탐욕 때문입니다. 헤로데가 2살 이하의 어린이를 죽인 것은 분노 때문입니다. 부자 청년이 예수님을 따르지 못한 것은 인색함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밤을 새워 기도할 때 잠을 자던 제자들은 게을렀기 때문입니다.
신학생들은 이와 같은 죄의 뿌리를 보면서 하느님과 멀어진 일들을 생각하며, 하느님께로 다시 돌아가도록 청하면서 지내게 됩니다. 우리들 또한 죄의 뿌리들 때문에 죄를 범하고 하느님과 멀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통사고는 자신의 운전 실력을 과신하기 때문에 생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스키장에서도 이제 막 배운 사람이 상급자만 타는 곳에 올라가서 사고가 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를 죄의 뿌리에서 벗어나 하느님께로 가까이 가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합니다. 그것은 바로 겸손함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세례자 요한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습니다. 회개의 세례를 주었고,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온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세례자 요한의 능력과 그분의 지혜를 보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분이 보여준 겸손함입니다. ‘나는 내 뒤에 오시는 분의 신발 끈을 풀 자격도 없다. 그분은 더 커지셔야 하고, 나는 더 작아져야한다.’ 세례자 요한은 겸손함을 보여 주셨기에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람의 아들 중에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사람은 없다.’
오늘 제1독서에서 사도요한은 이렇게 말을 합니다.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하느님에게서 태어나신 분께서 그를 지켜 주시어, 악마가 그에게 손을 대지 못합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속한 사람들이고, 온 세상은 악마의 지배 아래 놓여 있다는 것을 압니다. 또한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오시어 우리에게 참되신 분을 알도록 이해력을 주신 것도 압니다. 우리는 참되신 분 안에 있고,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이분께서 참하느님이시며 영원한 생명이십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겸손함으로 죄의 뿌리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주님과 함께 참된 진리의 길로 가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