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서서울 지역 교육 담당 업무를 맡으면서 서서울 지역의 본당엘 다니게 되었습니다. 신도림동, 봉천동, 서초동, 대방동, 등촌 1동, 양천 성당을 다녀왔습니다. 각 지구에서 주교님과 함께하는 미사에 참례하기 위해서 ‘구역장, 반장’님들이 500여명 이상이 오셨습니다. 서서울 지역에만 구역장 반장님들이 7000명은 넘습니다. 본당에만 있으면 잘 모르는 것을 이렇게 지구와 지역 단위로 생각의 폭을 넓히면 많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월례연수를 통해서 새로운 것을 배우려는 구역장, 반장님들을 보면서 희망을 보았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가장 많은 신자의 증가가 있었던 종교는 ‘가톨릭’이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삶의 자리에서 신앙인으로서 충실하게 모범을 보여 주었던 신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몸 중에 ‘위’는 암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이유는 계속 음식물이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운동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는 위에 쌓인 음식물이 소화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건강을 유지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심장’은 암에 걸릴 확률이 적다고 합니다. 심장은 끊임없이 피를 내보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건강하고, 성장할 수 있기 위해서는 복음을 전하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때로 힘들고 어려운 일이지만 그것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돌아볼 수 있고, 하느님의 은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강하게 이야기 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어떠한 피조물도 감추어져 있을 수 없습니다. 그분 눈에는 모든 것이 벌거숭이로 드러나 있습니다.” 이처럼 생생하게 하느님의 말씀의 힘을 표현하는 말도 없습니다.
어제 양천 성당의 미사에서 주교님께서 죄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3가지의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첫째는 죄를 짓는 행위가 있어야 합니다. 마음으로 생각한 것을 행동으로 옮길 때 죄가 된다고 합니다. 두 번째는 의도적으로 그런 행위를 해야 합니다. 세 번째는 그 행위가 죄가 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주교님의 말씀만 들어서는 죄를 짓는 것도 어려운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그것이 율법에 어긋나는 죄가 되는 것은 아닌지 따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을 합니다. “저 사람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은 죄가 되고 안 되는 것을 따지는 엄격함은 있었지만, 죄인을 이해하고 함께 받아들여 더불어 살아가야하는 하느님의 자녀임을 생각하는 너그러움이 부족했습니다. 세상을 흑과 백으로 나누는 것은 잘하지만 세상은 다양성 안에 모두가 조화를 이루면 살아야 하는 공동체라는 것은 몰랐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주 인상적인 대답을 해 주셨습니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사랑이 없는 엄격함과, 자비가 없는 정의는 참된 평화를 이루기 어렵습니다. 참된 평화는 사랑과 자비를 통해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