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신학교에 가면 많은 기념물들이 있습니다.
성당 입구에는 커다란 거울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제 서품을 받았던 선배들이 기증을 한 것입니다. 성당에 들어갈 때마다, 그 거울을 보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습니다. 강의실로 들어가는 입구에도 선배들이 졸업을 하면서 기증한 기념물이 있습니다. 돌에다가 ‘모든 이의 모든 것’이라고 글을 새겼습니다. ‘공부를 하는 이유는 모든 이를 위해서 봉사하라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산책로를 따라 걸어가면 십자가의 길이 있습니다. 십자가의 길을 걷다보면 끝에 작은 글이 새겨진 기념물이 있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사제 양성을 위해서 모든 재산을 봉헌한 자매님을 기억하며 만들었다고 합니다.
우리 성당도, 성전 신축을 하면서 많은 분들이 봉헌을 해 주셨습니다. 성전 신축 기금을 봉헌해 주셨습니다. 성당 안에 있는 많은 성물들도 봉헌을 해 주셨다고 들었습니다. 하느님께 봉헌하고자 하는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봉헌은 자발적이고, 순수해야 합니다. 목적을 가지고,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서 하는 봉헌은 참된 의미의 봉헌은 아닙니다.
가끔씩 신문에서 전 재산을 사회에 기부한 분들의 이야기를 읽을 때가 있습니다. 힘들고 어렵게 모은 재산을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해서, 가난한 이웃을 위해서, 병자들을 위해서 기부하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어떤 기자가 전 재산을 기부한 어느 노인에게 이렇게 질문을 하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많은 재산을 기부하셨는데 아깝지 않으십니까! 그러자 그 노인께서 이렇게 대답을 하셨습니다. ‘積善之家 必有余慶’이란 말씀을 하셨습니다. 선을 행하는 집안은 반드시 좋은 일이 생긴다는 뜻입니다.
오늘은 주님의 봉헌축일입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신지 40일 되는 날, 성모님과 성 요셉은 아기 예수님을 유대인들의 율법에 따라서 성전에 봉헌합니다. 제물은 비둘기 한 쌍이였습니다. 성전에 있던 시메온과 한나는 아기 예수님을 위해 축복의 기도를 해 주었습니다.
봉헌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우리들의 구원을 위해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순교자의 시대에 많은 신앙인들은 목숨을 바쳐 신앙을 증거했습니다. 우리는 순교의 시대를 살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신앙 때문에 목숨을 바칠 일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이제 다른 것들을 하느님께 봉헌 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기도 봉헌입니다. 하루 24시간 중에 조금이라도 하느님을 찬미하고, 기도하는데 시간을 봉헌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도하는 신앙인은 하느님께로부터 축복을 받고, 힘들고 어려운 일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늘 시간을 내서 따로 기도하셨습니다.
둘째는 선행의 봉헌입니다. 선행은 아주 작은 것부터 할 수 있습니다.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는 것은 커다란 선행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 선포를 하시면서 힘들고 어려운 이웃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찾아오는 사람들을 치유해 주셨고, 누군가 청을 하면 기꺼이 가셔서 도움을 주셨습니다.
예전에 어느 식당의 식탁에서 보았던 글이 생각납니다.
생각하는 시간을 따로 떼어 놓으십시오. 그것은 힘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읽는 시간을 따로 떼어 놓으십시오. 그것은 지혜의 샘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고 사랑 받는 시간을 따로 떼어 놓으십시오. 그것은 신이 부여한 특권입니다. 웃는 시간을 따로 떼어 놓으십시오. 그것은 영혼의 음악이기 때문입니다. 주는 시간을 따로 떼어 놓으십시오. 그것은 이기적 이기엔 우리의 하루가 너무 짧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는 시간을 따로 떼어 놓으십시오. 그것은 지상 최대의 힘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나에게 소중한 것들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기도와 선행의 봉헌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